허영자
아픔을 머금은 내 흰 피는
모두 어디로 흘러갔나?
우유라는 이름으로
불고기 육회 산적 너비아니 육포 장조림 떡갈비…
갈비탕 설렁탕 곰탕 내장탕 족탕 꼬리탕 사골탕…
스테이크 스튜 로스트 커틀릿 햄버그…
목심 등심 안심 채끝 우둔살
설도 사태 갈비 양지머리 앞다릿살
안창살 부챗살 살치살 업진살 토시살 치마살 제비추리
모두 인간들이
내 살과 뼈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고
입맛대로 조각조각 내 몸에 붙여준 이름이다
맞다. 인간들에게는
새김질하는 한 마리 소
정육점 갈고리에 걸린 한 뭉치 붉은 고깃덩어리
하지만 내게도
“음매” 하고 부르면 돌아보는 엄마가 있고
“음매” 하고 부르면 다가와서 몸 부비는 아가가 있단다.
소야, 네 입장은 잘 들었다.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니 슬프구나. 하지만 아침상에 오른 이 우유를 어쩌란 말이냐. 스테이크 집 점심 상견례를 어쩌란 말이냐. 힘든 하루 일 마치고 갈비탕 한 그릇 찾을 사람들을 어쩌란 말이냐. 돼지는 또 돼지 입장이 있을 것 아니냐. 닭은 닭대로 또 홰를 칠 것 아니냐. 지글지글 보글보글 한창 대세인 먹방 프로그램은 또 어쩔 것이냐. 조금만 기다려다오. 곧 구슬피 엄마와 아가가 서로 부르지 않는 날이 올 거란다. 안창살이 안창살을 낳고, 살치살이 살치살을 낳는 그날이 올 거란다. 모든 음식에서 울음을 제거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시인 반칠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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