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한 가지도 똑같은 게 없으니.
아이유의 모든 순간은 음악으로 표현된다. 희열, 쓸쓸함, 불쾌함…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저마다 다른 분위기의 곡으로 만들어낸다. 갈수록 보컬은 성숙해지고, 리드미컬한 랩까지 소화한다. 다채롭다. 아이유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눈 앞에 무지개빛이 비친다.
25일 아이유의 정규 5집 ‘라일락(LILAC)’이 발매됐다. 2017년 4월 발표한 정규 4집 ‘팔레트(Palette)’ 이후 4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스물아홉, 20대의 끝자락에 있는 아이유의 모습이 앨범에 모두 담겼다. 동명의 타이틀곡 ‘라일락’과 더블 타이틀곡 ‘코인(Coin)’을 비롯해 아이유가 20대에 느껴온 감정들이 모두 담긴 총 10개의 트랙이 수록됐다.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꽃말이 담긴 ‘라일락’이라는 앨범명은 20대를 마무리하는 아이유의 마음이 한가득이다.
앨범의 첫 트랙인 ‘라일락’은 10년간 열렬히 사랑하다가 봄이 지르는 탄성 속에 기쁘게 이별하는 한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뜨겁게 지내온 20대를 기쁘게 떠나보내는 아이유의 특별한 인사처럼 느껴진다. 쓸쓸해 하기보다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잘 해냈다”고 독려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화사하고 경쾌한 사운드로 봄의 설렘을 담은 아이유는 70-80년대 디스코 사운드를 통해 행복으로 가득 찬 모습을 표현했다. 아이유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임수호, 닥터 조(Dr JO), 웅킴, 니코(N!ko)가 작곡해 신선함을 더했고, 아이유가 단독 작사했다.
더블 타이틀곡 ‘코인’은 ‘라일락’과는 상반된 이미지의 곡이다. 자극적인 것들을 게임장의 코인으로 빗댄 것이 흥미롭다. 단독으로 작사한 아이유는 ‘코인’을 “자극적인 것들은 대체할 수없이 매력적이지만 결국 건강에 해롭죠. 내 건강에 해로운 게임은 딱 요번 한 판만 더 할게요”라고 소개했다. 게임장을 연상시키는 샘플 사운드를 시작으로 팝타임(Poptime)의 펑키한 그루브 밴드 사운드 트랙과 아이유의 멜로디 라인이 만나 처음 보는 아이유의 스타일이 완성됐다. 아이유는 최초로 랩까지 시도해 이때까지 선보였던 곡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선보였다. 아이유는 아직 이렇게 보여줄게 많다.
그는 늘 그렇듯 전곡 작사에 참여했다. 각각 딘, 악뮤 이찬혁과 협업한 ‘돌림노래’, ‘어푸 (Ah puh)’를 제외한 모든 곡이 단독 작사다. 그간 나이 시리즈 앨범 ‘스물셋’(23세)·‘팔레트’(25세)·‘에잇’(28세)에서도 직접 가사를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했던 것처럼, 이번 앨범에는 아이유가 생각하는 사랑 혹은 바라보는 세상이 재미있게 표현됐다.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의미는 다 묻어나기에 ‘참 아이유답다’는 것이 중론이다.
작곡에서는 힘을 뺐다. 자작곡마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아이유는 이번에는 힙합, R&B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뮤지션들과 협업했다. 나얼, 이찬혁, 딘, 우기, 페노메코 등과 작업한 것은 새로운 부분이다. 아이유는 신보 발매 뒤 진행한 네이버 NOW ‘스물아홉 살의 봄’에서 “원래 내가 만든 6곡, 작가님들이 만든 6곡으로 구성을 하려고 했는데 내 곡이 앨범 톤에 묻는 느낌이 아니더라”라며 “내가 프로듀싱을 맡은 이후로 창작자로서 생각이 들어가다 보니 보컬리스트로서 보여드리는 게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진 재료가 많은 보컬리스트인데, 가수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재밌지 않을까 해 정규 5집 '라일락'을 통해 보컬적으로 많은 시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뮤직비디오 또한 재밌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아이유의 20대를 기차 여행으로 비유해 스토리라인을 구성한 것이 인상적이다. 뮤직비디오는 설레는 표정으로 기차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아이유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20대에 발표한 앨범들이 목적지로 표현돼있는 시간표를 본 뒤 아이유는 여행을 시작한다. 조금은 어색했던 아이유가 화려하게 변하고 곧이어 정체 모를 남자들에 맞서 싸우기도 한다. 얼굴은 상처투성이지만 이내 초연해진 모습이 역경과 고난을 뚫고 성장한 아이유를 뜻하는 듯하다. 이후 아이유는 꽃가루가 흩날리는 곳에서 행복을 만끽한다. 화려한 피날레다. 꿈같은 여행을 마치고 기차에서 내린 아이유는 다가오는 다른 기차를 마주하고 옅은 미소를 짓는다. 미련 없이 30대를 시작하는 모습. 이 모든 스토리 라인이 감각적인 영상미와 경쾌한 멜로디와 어우러져 전달력을 강화한다.
아이유는 타이틀곡 두 곡과 선공개된 수록곡 ‘셀러브리티(Celebrity)’까지 전혀 다른 분위기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여기에 수록곡 ‘플루(Flu)’, ‘에필로그’ 티저까지 공개하며 앨범 전반에 공을 들였다. 국내 최고의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인 VM프로젝트, 플립이블, 써니비주얼이 작업에 참여해 시너지를 발휘했다. 각 곡의 스타일에 맞춰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번 앨범의 의외의 관전 포인트는 퍼포먼스다. 시계춤(‘너랑 나’) 같은 시그니처 안무도 있는 아이유지만 퍼포먼스로 가득 찬 곡을 선보인 것은 아주 오랜만이다. 아이유는 선공개한 ‘셀러브리티’에서도 안무를 선보여 팬들을 신나게 했었는데, 정규 앨범의 예고편 격이었다. 타이틀곡 ‘라일락’에서 쉴 새 없는 안무를 선보이는가 하면, ‘코인’에서는 선이 강조된 안무를, 수록곡 ‘플루’ 티저에서는 좀비를 연상케 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곡에 따라 변신이 가능한 아티스트라는 것이 다시금 입증되는 순간이다.
이처럼 아이유가 전방위로 신경 쓴 정규 5집은 음원차트를 강타했다. 벅스, 지니뮤직 등 주요 음원차트의 실시간 차트 전곡을 줄 세우기 했다. 타이틀곡 ‘라일락’은 역주행 대세곡인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을 제치고 1위를 차지, 1위부터 11위까지(‘롤린’ 제외)가 모두 아이유의 곡이다. 최근 24시간 동안의 이용량을 반영한 멜론 24Hits에서도 발매되자마자 줄 세우기를 하더니, 1위를 탈환했다.
오랜만에 음악 방송 나들이에도 나선다. ‘팔레트’ 이후 4년 만에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아이유는 26일 KBS2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MBC ‘쇼!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등에서 무대를 꾸민다. 아울러 JTBC ‘유명가수전’, tvN ‘유 키즈 온 더 블록’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추며 오랜만애 ‘가수 아이유’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음악 팬들은 함께 아이유의 20대 마지막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새롭게 다가올 30대의 아이유를 기대하고 있다. 아이유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에필로그’ 소개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다스러웠던 저의 20대 내내, 제 말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 이야기 나눠 주신 모든 청자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스물세 살의 아이유도, 스물다섯의 아이유도, 작년의 아이유도 아닌 지금의 저는 이제 아무 의문 없이 이 다음으로 갑니다. 안녕.”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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