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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자산어보' 설경구 "그 섬이 그립더라고요, 지금도 생각나요"

배우 설경구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태풍 때문에 2~3일 촬영을 안한다고 하니 스태프들이 싹 사라졌어요. 그래서 변요한에게 '너 나랑 놀자'며 낮부터 비오는 삼거리 호프집에 앉아 주인이 틀어주는 대학가요제 노래를 듣는데…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 ‘자산어보’를 느낌으로 표현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답이 있을까. 가족같은 분위기, 탄탄한 시나리오, 배우들의 감정을 살리는데 탁월한 연출까지. 칼라보다 더 아름다운 흑백영화는 내내 편안하고 부드럽다.

처음으로 갓을 쓰고 스크린에 나타난 설경구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고 섬에 갇혀야 하는 지식인에서 호기심을 얻고, 이를 자신의 학문과 사상으로 연결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그냥 옷을 딱 입고 나타나니 정약전’이었다. 그는 “나이를 먹었어도 그 칭찬이 용기를 갖게 하더라”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Q. 첫 사극에 도전했다.

- 기회는 있었는데 용기가 안나서 지금까지 왔네요. 이준익 감독과는 앞서 ‘소원’을 함께 했잖아요.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이를 풀어가는 감독님 모습에 신뢰가 갔어요.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장점만 이야기해주세요. 카메라 테스트 촬영 당시에도 저는 익숙지 않은데 약간 오버하셔서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시더라고요. 나이 먹어도 그 칭찬이 용기를 갖게 하는데 ‘감독님과 함께 해 다행이다’ 싶었어요.

Q.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은?

- 제목만 보고 이게 뭐냐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어류에 대해 어떻게 영화로 만드냐고. 처음에는 배역 위주로 봤고, 두 번째 보니 마음이 깊어졌고, 세 번째 봤을 때는 눈물이 나요. 감독님께 그리 말씀 드렸더니 되게 좋아하시면서 그런 영화라고 하시더라고요.

영화도 촬영장도 참 따뜻했어요. 가거댁(이정은)이 마을 사람들에게 그러잖아요. “나라에는 죄인이라도 나한테는 손님잉께”라고. 영화의 분위기를 그 한마디가 잘 설명한다고 봐요. 책보다 잘나왔다 안나왔다 이런건 모르겠고, 저는 재미있게 봤어요. 희망을 봤어요.

사진=씨제스 엔터테인먼트


Q. 변요한과의 연기 호흡은?

- 정해놓고 하는건 없거든요. 창대와 정약전이 만나고, 내 도움을 뿌리치고, 다시 생명을 구해주고, 글을 가르치고, 출세길에 오르고 싶고…. 우리가 큰 틀을 짜지는 않아요. 그때그때 감독님과 변요한과 이야기하며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큰 틀은 감독님이 가져가고, 배우들은 매 순간마다 충실하고. 감독님께서 하나하나 쌓아 만든거에요.

Q. 본인이 변요한을 창대 역에 추천했다고.

- 예전에 무심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는데 ‘너 눈이 참 좋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첫인상인데, 그 이후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눈도 못 마주치고 낯을 가리더라고. 성격적으로 저랑 비슷해요. 그래서 추천했던 것 같은데. 약전과 창대는 접점이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감독님 의중에 없던 것 같던데 조금 생각해보시더니 출연 제의를 하시더라고요. 다행히 바로 하겠다고 해줘서 고맙죠.

Q. ‘불한당’ 이후 설경구에게 ‘브로맨스’는 빠질 수 없는 흥미요소가 됐다.



- 후배들과 그냥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선배 네가 후배가 아니고, 조금 더 다가가려 하고. 촬영 전에 술 한잔씩들 하잖아요. 그러면 남자 배우들은 평정시켜버려요. 형이라고 부르라고. 거리부터 좁히고, 선배라고 해서 모든 선배가 귀감이 되는건 아니잖아요. 다가가려 하면 다가오고, 그러면 어느 선에서 만나지겠죠. 그렇게 동료로 편해지는거에요. 할말 다 하면서. 촬영 끝나도 그 관계가 똑같이 이어지고, 지금도 변요한 뿐만 아니라 다른 젊은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는걸 보면 제가 감사하죠.

Q. 오랜 지기 이정은과의 로맨스 호흡도 인상적이다.

- 편집에서는 짧고 담백하게 표현됐는데, 이정은과는 정말 편한 사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봤던 사이여서 그런지 서로 낄낄거리면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이정은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편했으니까. 연기할 때 상대 배우를 두고 ‘저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할까’를 걷어내도 되는 만큼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편했어요.

사실 너무 늦게 뜬 배우 같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자연스러운 연기의 대가였거든요. 잘 잡아내고, 잘 즐기고, 웃기고, 정도 많은데 춤까지 잘춰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할 때 메인 역할인 곰보할매로 출연했는데 거의 뭐 무대를 휘어잡았었죠. 당연한 건데, 갖고 있는 것에 비해 너무 늦게 알려졌어요. 그래도 뭐 잘 되자마자 대형사고를 쳤잖아. 역시 이정은이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Q. 태풍이 오는데 현장에서 맞았다고.

- 집에가기 너무 멀어요. 배타고 한시간 넘게 목포에 가서 집까지 가려면 너무 멀잖아요.(웃음) 첫 번째 태풍은 준비할 새 없이 몰아닥쳤고, 두 번째는 ‘태풍 때문에 2~3일 촬영 없습니다’ 하는 공지가 나오니까 스태프들이 싹 사라졌어요. 그래서 변요한에게 ‘너 나랑 놀자 태풍보면서’ 했더니 좋대요. 서로 벗이 되어서, 정말 낭만적이었어요. 비오는 삼거리 호프집에 낮부터 앉아서 주인이 틀어주는 대학가요제 노래 듣고, 그집 어린 딸과 놀아주고. 멀어서 못 갔다는건 농담이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Q. 촬영 전 줄넘기를 천개씩 하며 준비한다고. 에너지의 원천은?

- 줄넘기를 두시간 정도씩 해요. 천번은 10분이면 끝나는거고. ‘공공의적’ 끝나고 두달 정도 ‘오아시스’를 준비하며 살이 90㎏까지 쪘는데 지문에 ‘앙상한 갈비뼈’가 나오다보니 모텔방에서 처음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습관이 되다 보니까 계속 해야 하는데 해외 영화제에 가서도 하다가 사고날뻔 하기도 했었죠. 칸에서는 베란다에서 하다 문이 잠기고, 베를린에서는 마룻바닥 있는 방 구하느라 난리나고, 토론토에서는 화장실에서 하고.

연기자는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새 작품일 수도 있고. 그런 궁금증 걱정 기대가 팔딱팔딱 뛰게 한다고 해야 하나. 영화라는 작업이 그런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요. 촬영할 때 7시 콜이면 3시에 일어나서 땀을 쫙 빼요. 그게 그런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에요. 지겨운 것을 꽤 반복하는데 지겹지 않은 이유가 오늘 내가 치는 대사, 움직이는 동선, 만나는 배역에 대한 호기심과 걱정 설레임. 그런게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Q. 다양한 유명 배우들의 우정출연에 큰 역할을 했다.

- 감독님께서 물어보시면 툭 이야기 하는거죠. ‘자산어보’의 경우 저와 변요한, 이정은 외에는 안 알려진 배우들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 정약전도 안 알려진 인물에 창대는 가공됐고, 모든게 낯설어서 그럴거면 친숙한 배우들로 하자고 제안을 드렸어요. 감독님께서 “하겠냐? 이 먼곳까지 하루 촬영하러” 하셨는데 제가 “흔쾌히 할거다”라고 부탁을 해보라고 말씀 드렸죠. 다 한다고 해주셔서 덕분에 영화가 친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섬 촬영장에서 특별출연하는 배우가 오면 다음날 우연히 촬영이 없어요. 촬영 왔다고 환영회를 해주고, 간다고 송별회 해주고 그런 일이 많았죠. 숙소 뒤 명사십리도 산책하고, 즐겁게 촬영하고, 저녁 먹으며 행복해들 하고 갔어요. 영화 보고 나서 변요한에게 그 촬영장 다시 한번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 섬이 그립더라고요. 지금도 가끔 생각나요.

/최상진 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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