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태국 밧화에 10억 달러나 투자하고 있었다. 당시 JP모건은 금리 4% 선에 달러화·엔화를 조달해 금리 12% 수준인 태국 국채로 바꾸면 큰 차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5년부터 태국 경제가 추락하자 투자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확산됐다. 위기를 직감한 JP모건은 위험 회피 방법을 고민한 끝에 선물과 옵션을 절묘하게 결합한 총수익스와프(TRS)라는 파생 금융 상품을 만들었다.
이 상품은 밧화가 폭락하더라도 JP모건은 오히려 돈을 버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TRS를 들고 한국으로 건너온 JP모건은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판매했다. 마침 한국에서는 세계화 바람을 타고 외화를 빌려서 해외에 투자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던 때여서 TRS는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태국 밧화, 인도네시아 루피아 등이 폭락하면서 국내 업체들은 수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떠안았다. 일부 업체는 매각 위기에 처하는 등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적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배경에도 파생 상품이 있다. 리먼 등 금융기관들은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주택저당증권(MBS)을 만들고 이 MBS를 적절히 섞어서 부채담보부증권(CDO), 또 이를 더 복잡하게 엮은 합성 CDO 등을 잇달아 개발해 팔았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자 파생 상품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금융기관들은 잇달아 도산하고 결국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최근 미국 월가에 다시 파생 상품 공포가 덮쳤다.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이 이끄는 아케고스 캐피털매니지먼트의 차액결제거래(CFD) 등이 부실화하면서 아케고스와 거래한 크레디트스위스(CS)·노무라홀딩스 등 금융 회사들이 최대 100억 달러 손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CFD는 실제 주식을 매수하지 않고 주가 상승 또는 하락에 따른 차익만 하루 단위로 정산받을 수 있는 장외 파생 계약이다. 월가는 지금 ‘제2의 아케고스’가 나올 수 있다며 초긴장 상태라고 한다. 선진 금융 기법이라는 이름으로 숫자(고수익)만 좇는 파생 금융 상품에 맹목적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일반 투자자와 금융 회사 모두 되돌아봐야 할 때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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