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Janus)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문(門)의 수호신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문에 앞뒤가 없다고 생각해 야누스가 두 얼굴을 가진 것으로 여겼다. 이중적 인간을 꼬집을 때도 야누스가 쓰였다. 두 얼굴의 사람은 19세기 스코틀랜드 작가가 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에도 등장한다. 약물을 써서 낮에는 선한 지킬 박사로, 밤에는 사악한 하이드로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야누스’가 청와대에 둥지를 틀고 지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부동산 정책 최고 책임자였던 김상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하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주도했다. 김 실장은 이 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에 발 빠르게 본인 소유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14.1%나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4·7 재보선을 앞두고 국민 분노가 폭발하자 문 대통령은 서둘러 김 실장을 경질했다.
김 전 실장은 경제학 교수 시절부터 ‘재벌 저격수’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2017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국회 청문회에 참석할 때 30년 이상 됐다는 낡고 해진 가죽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시중에선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라는 손가락질이 쏟아지고 있다.
현 정부의 역대 청와대 정책실장인 장하성·김수현·김상조 등은 위선적이었을 뿐 아니라 무능했다. 또 헌법 정신을 훼손하면서 무리하게 경제 체제 개조를 시도하고 국론 분열을 조장했다. 세입자 보호를 명분으로 임대차3법을 밀어붙였으나 전월셋값 폭등과 전세 매물 급감으로 서민들의 주거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정부’와 ‘집값 잡기’ ‘소득 분배 개선’ 등을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집값 폭등과 일자리 쇼크, 소득 양극화를 초래했다.
‘윗물’들의 표리부동 행태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전월세 5% 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7월 임대차법 통과를 앞두고 보유 중인 아파트 임대료를 9%가량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연일 ‘정의’와 ‘공정’을 외쳤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은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줬다. 조 전 장관은 2010년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 특채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을 때 페이스북을 통해 “파리가 앞발 비빌 때는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라고 선동했다. 성 평등을 역설하던 인권 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도 위선의 대표 사례다. 가식적 행태로 논란을 일으킨 인사들은 대부분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민변 출신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야누스 정권”이란 조롱이 쏟아지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두 얼굴 정권’은 국정 운영에선 낙제점을 받았지만 선거와 권력 게임에선 정치 9단급의 꼼수를 보여줬다. 따라서 민심 이반이 비등점을 넘었다고 해서 권력의 배를 쉽게 뒤집을 수는 없다. 성난 민심을 끌어안을 수 있는 대안 세력이 등장해야 권력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현 정권의 4대 실책인 위선과 무능·폭주·분열을 교정하려면 도덕성과 실력·용기를 갖춘 새 리더가 등장해 미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국민을 통합해 가야 한다.
그러려면 야당도 대수술을 해야 한다. 우선 낡은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7 재보선 직후 약속대로 자리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리 전과를 갖고 있는 데다 ‘별의 순간’ 운운하면서 역술에 기대는 듯한 정치 행태를 보인 김 위원장의 리더십은 21세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윤안오(尹安吳) 트리오’로 불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등 새로운 세대 중심으로 새 판 짜기를 해야 한다. 여기에 원희룡 제주지사, 나경원 전 의원 등도 가세해 협업과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보수 야당의 ‘기득권 대변’ 이미지를 조금씩 씻어낼 수 있다. 여권에서도 실용 개혁과 통합을 추구하는 새 지도자가 부상해 합리적 스윙보터를 놓고 야당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여야 양쪽 모두에서 ‘뉴 리더십 연대’가 이뤄지고 깨어 있는 민심이 함께한다면 야누스 정치의 퇴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김광덕 논설실장 kd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