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팬데믹의 잔혹한 파도가 휩쓸고 간 뒤, 우리의 일상은 급변했다. 마음 놓고 모임을 가지는 것이 어려워졌고, 모든 행사나 절차가 간소화됐으며, 마스크는 하루도 빠짐없이 장착해야 하는 필수품이 됐다. 그럼에도 봄을 향한 설렘은 변함없이 돌아왔다. 오히려 이전의 그 수많은 봄들보다 더욱 애틋하고 절실한 느낌이다. 1년 전 봄보다는 그래도 낫겠지 하는 믿음. 어느 때보다 정적으로 변해버린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설렘의 가능성을 약속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펜데믹 이후, 나는 모든 설렘의 작은 가능성들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팬데믹 이후, 첫 번째 설렘,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에 매우 민감해졌다. 벚꽃 축제가 불가능해지자 길가에 핀 꽃들 하나하나가 더욱 소중하고 찬란하게 느껴졌고, 여름이 다가오자 초록으로 물드는 산과 들판의 싱그러운 속삭임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가을이면 더욱 알록달록하게 물드는 낙엽의 페스티벌, 새하얀 설경 속에 눈부시게 저물어가는 노을의 아름다움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 반경이 극도로 제한됐기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자연의 소담스러운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게는 경이로운 축복이자 선물처럼 다가왔다. 두 번째 설렘. 공식적인 일정이 줄어드는 대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삶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새롭게 바뀐 삶의 방식들이 또다른 설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컨대 ‘온라인 수업’이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면 과연 강연장의 생생한 열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막상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자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직접 볼 수 있는 오프라인 강의가 가장 좋은 방식이긴 하지만, 온라인 강연에는 뜻밖의 장점들이 많다.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안 돼서,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두려워서 듣지 못했던 그 모든 강의를, ‘온라인 수업’으로 참여하면 그 모든 장애물이 일시에 해소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온라인 수업은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집에서 강연을 하니 나는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편한 복장으로, 더욱 거리낌 없이 허심탄회하게 독자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팬데믹 시대의 세 번째 설렘. 그것은 무엇보다도 ‘투명한 나 자신과 만나는 기쁨’이다. 그동안 내 스케줄에 바빠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내가 진정으로 돌보아야 할 소중한 꿈과 인연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돈을 버는 일에 바빠 꿈을 가꾸는 일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정말 잘 있는지’ 물어보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그것은 멀리서 온 낯선 손님을 만나는 설렘과는 또 다른 설렘, 즉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설렘이 아닐까. 불필요한 소비나 충동적인 소비를 줄이고,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과 공간’을 소중하게 가꾸는 꼭 필요한 소비만 하게 되니 그 또한 ‘새로운 나 자신과 만나는 설렘’이었다. 2ℓ들이 페트병에 들어있는 물을 수십 병씩 배달하느라 수고하실 택배기사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져서 나는 ‘전기 없이 쓸 수 있는 정수기’를 생각하게 됐다. 전기 없이, 한 달에 한 번 필터만 갈아주고, 수돗물을 부어 내리기만 하는 정수기를 사용하니 플라스틱 쓰레기가 확 줄었다. 택배기사님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페트병으로 인한 플라스틱 쓰레기도 줄이니 기분이 좋아졌다. 지구를 더 오래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아주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 느낌이었다. 이렇듯 일상 속에서 설렘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우리 옆에 널려 있다. 우리가 더 깊고 따스한 눈으로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을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더 섬세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의 아픔을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설렘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나와 타인과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보살필 수 있는 따스한 시선을 회복한다면,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설렘은 그 어떤 재난 앞에서도 끄떡없이 샘솟을 것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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