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은 변화무쌍한 팔색조 같다. 그룹 엑소(EXO)과 슈퍼엠(SuperM)의 백현은 아이돌의 정석 같더니, 솔로 백현은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아티스트 같다. 어느 모습이더라도 전혀 어색함 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내공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가수다.
지난달 30일 백현의 세 번째 미니 앨범 ‘밤비(Bambi)’가 발매됐다. 슈퍼엠, OST, 컬래버레이션 등으로 쉼 없이 달려온 백현이 10개월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R&B 장르를 선택한 백현은 사랑을 테마로 다양하나 시선의 6곡을 담았다. 여느 때보다 백현의 손길이 많이 거친 앨범이다.
동명의 타이틀곡 ‘밤비’는 백현이 “나의 맞춤 곡이다"라고 할 정도로 백현의 감성이 한껏 묻어있는 곡이다. 감성적인 기타 선율과 백현의 그루비한 보컬이 어우러진 R&B 장르 곡으로, 사랑에 푹 빠진 이의 이야기를 ‘밤비’에 빗대 동화적인 표현들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밤비’는 밤에 내리는 비와 사슴 캐릭터 밤비를 뜻한다. 인기 작곡가 디즈(DEEZ), 윤수(YUNSU)와 싱어송라이터 쎄이(SAAY)가 곡 작업에 참여했다.
백현은 솔로 앨범에서 늘 그랬듯, ‘밤비’에 그 무엇보다 보컬에 심혈을 기울였다. 대신 고음이나 성량을 강조하기보다 듣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보컬을 선택했다. 백현은 ‘밤비’ 가사 속 각기 다른 의미의 밤비를 표현하기 위해 발음이나 목소리 톤에 신경 쓸 정도로 섬세한 작업을 거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하고 내지르는 보컬이 많은 그룹 앨범과는 다르게 솔로 앨범에서는 감성적인 R&B에 치중한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보컬에 힘을 주는 대신 퍼포먼스에는 힘을 뺐다. 그렇다고 퍼포먼스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느낌에 더 치중했다. 화려하고 동작이 많지도 않고, 비트에 맞춰 절도 있는 안무들로 이뤄져 있다. 동작이 크지 않음에도 특유의 분위기 덕분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이 또한 백현이 의도한 것이다.
뮤직비디오는 백현의 성숙한 매력이 담겼다. 페도라를 쓰고 얼굴이 절반 가려진 채 춤을 추는 백현은 어딘가 비밀스러운 모습이다. 잠깐씩 보이는 촉촉한 눈빛은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럴수록 곡의 분위기는 더 무게감 있고 진하게 느껴진다. 텅 빈 거리에서 독무를 하는 백현의 모습은 섹시한 매력까지 있다. 이후 기차 안, 터널 등 공간을 옮겨가며 퍼포먼스를 하고, 클라이맥스에는 애절한 내면 연기까지 펼친다. 비를 맞으면서 노래하는 백현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빗소리가 이어져 여운이 남는다. 백현은 리스너들에게 곡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 모든 컷 편집에 신경 썼다고. 백현의 의도대로 성숙한 남자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절제된 섹시미가 모두 담겼다.
스타일링 또한 엑소와 슈퍼엠에서 쉽게 볼 수 없던 것들이다. 전체적인 톤은 어둡고 단조로워졌다. 모던하고 댄디하다. 페도라를 메인으로 슈트, 가죽 재킷, 장갑까지 모두 정제된 스타일링이지만 섹시미가 묻어난다. 30대의 성숙함을 표현하려 했던 것과 딱 맞아떨어진다.
백현의 새로운 감성에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특히 음반에서 강세를 보였던 백현은 이번 앨범에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선주문량이 83만장이 넘어선 것. 발매 첫날에는 한터차트에서만 76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앞서 엑소에 이어 솔로 앨범으로 밀리언셀러로 등극했던 백현이 또다시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음원 차트도 석권했다. 공개와 동시에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에서 전 세계 56개 지역 1위, 중국 최대 음악 사이트 QQ뮤직 및 쿠거우뮤직 디지털 앨범 판매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QQ뮤직에서는 앨범 공개 약 1시간 만에 올해 한국 남자 가수 앨범 중 처음으로 판매액 1백만위안을 달성한 앨범에게 부여하는 ‘플래티넘 앨범’에 올랐다. 발매된 지 사흘 째(2일 오후 기준) 벅스, 지니뮤직 등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에서도 상위권에 자리잡고 있다.
이번 앨범은 백현이 30대를 맞이하고 처음으로 발표하는 앨범이자, 군 입대 전 마지막으로 발표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군 입대가 목전에 다가와 음악 방송 활동은 하지 못했지만, 백현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앨범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20대의 다채로운 백현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아티스트 백현’을 볼 수 있었기에, 전역 후 더 성숙해져 있을 백현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백현은 앨범을 발매하며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미래를 이렇게 그렸다.
”백현이라는 아티스트가 이전에는 성장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느슨하고, 음역대가 높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가사와 감정선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