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람들은 '윤여정은 이혼녀야. TV에 나와선 안 돼'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를 아주 좋아하죠. 이상한 일이지만 그게 인간이에요."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된 윤여정이 3일자(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서 엉뚱하고도 인자한 할머니(순자) 역할로 열연했다.
그는 “작은 역할만 들어와서 괴로워했고 사람들도 대부분 나를 싫어했다”며 "그만두고 미국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이렇게 살아남았고 연기를 즐기고 있다"고 NYT와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서울의 자택에서 NYT 기자와 화상으로 인터뷰한 윤여정은 "일흔셋의 아시아 여성이 오스카 후보에 오를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면서 영화 '미나리'가 자신에게 많은 선물을 줬지만 부담도 크다고 했다. 그는 197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결혼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 10여 년을 살고 이혼한 뒤 돌아와 한국에서 다시 배우로 활동하며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을 털어놓기도 했다.
윤여정은 인터뷰에서 "스트레스가 많다. 사람들이 이제 나를 축구선수나 올림픽 국가대표처럼 생각하는데 부담스럽기도 하다"며 자신에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의 수상 여파로 한국 언론이 윤여정의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를 쉴 새 없이 내는 것과 관련 “봉 감독에게 ‘다 너 때문이야’라고 말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윤여정의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년)를 감명 깊게 봤다고 한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은 NYT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윤여정 본인의 삶과 자세가 자신이 쓴 미나리의 할머니 역할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윤여정이 한국에서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와 진지한 태도로 유명한 배우라면서 그런 점들이 미나리에서의 역할을 통해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정 감독이 자신의 초기 출연작들까지도 소상히 꿰고 있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정 감독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감독은 아주 조용한 사람"이라면서 자기 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 만큼 좋아한다며 정 감독을 칭찬하기도 했다. 이들은 윤여정의 절친한 친구인 이인아 프로듀서의 소개로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윤여정은 미나리 촬영 당시 손자 데이비드로 출연한 앨런 김에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앨런 김이 연기 경험이 거의 없어 자신과 함께 등장하는 촬영분에서 인내심을 시험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앨런이 대사를 모조리 암기한 것을 보고 그런 걱정을 털어냈다고 했다.
앨런이 연기에 임하는 태도를 대하면서 자신의 초년병 시절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윤여정은 “연기를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았고, 영화를 공부하지도 않았다”며 "열등감이 있었다. 그래서 대사를 받으면 아주 열심히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인터뷰에 임한 윤여정의 모습에 대해 "생각에 잠긴 표정에 상냥한 미소와 쾌활한 웃음이 터져나왔고, 고요한 풍모엔 자연스러운 기품이 있었다"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는 단호했다"고 평했다.
한편 '미나리'는 아카데미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 여우조연, 남우주연, 각본, 음악상의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제93회 오스카 시상식은 오는 25일 열린다. 이에 앞서 ‘오스카 바로미터’로 불리는 미국배우조합(SAG)상 시상식도 4일 열린다. ‘미나리’는 SAG상에 여우조연상(윤여정), 앙상블상(출연진 전원),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등 3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박동휘 기자 slypd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