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바다주 한 중소도시에서 살던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은 공장이 문을 닫자 유일하게 남은 밴을 타고 기약 없이 떠난다. 일자리를 잃은 데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밴을 집 삼아 미국 서부로 유랑에 나선 것이다. 그는 발길 닫는 대로 돌아다니며 일하다가 노매드 공동체에 합류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용기도 얻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고통을 겪는 미국인들을 그린 영화 ‘노매드 랜드’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지난해 9월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올해 2월 골든 글로브 작품·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어 25일 예정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감독·작품상 분야에선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의 강력한 경쟁작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 클로이 자오(39)는 골든 글로브 감독상을 수상한 두 번째 여성이자, 첫 번째 아시아 여성이다. 그는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영국·미국 등에서 유학한 중국인 영화 감독이다. 14세에 영국 기숙학교에 들어갔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미국 마운트홀리요크대에서 정치학 학사 과정을 마친 뒤 뉴욕대에서 영화를 배웠다.
자오가 국제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자 중국 언론은 “중국의 자랑”이라며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최근 자오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온라인 검열이 강화되고 4월 말로 예정됐던 노매드 랜드의 중국 개봉이 취소될 수 있다는 소식도 흘러나온다. 중국 당국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를 금지하라고 지시했다 한다. 자오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 중국에 비판적이라는 게 그 이유라고 전해진다. 자오는 2013년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중국의 양육 환경을 비판하며 “중국은 거짓말이 만연한 곳”이라고 했고, 올해 초에는 “중국 전통 문화에 부담감을 느끼고 서구 문화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국에 대해 비판했다고 영화 상영이나 시상식 중계를 금지하는 것은 우리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 확산을 경계하려면 자유·인권·법치를 중시하는 민주 진영과의 연대 강화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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