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 부문 갑질 근절 대책을 추진한 지 3년이 다 돼 가지만 정작 정부 내부 갑질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소속 기관에 가해자를 신고해도 제 식구 감싸기 식의 낮은 수위의 징계에 그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공 기관 갑질 행위 감독을 총괄하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설문조사 상 갑질 행위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내괴롭힘방지법을 공무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6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지방의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40대 경찰관 A 씨는 매일 저녁을 술이나 정신과 약물로 지새우고 있다. 상관 B 씨로터 지난해 수개월에 걸쳐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다. B 씨는 경위 계급인 A 씨를 경사 계급으로 낮게 호칭하거나 후배들이 보는 자리에서 업무상 지적을 하는 등 수시로 망신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B 씨는 A 씨에게 “X발 X같네. 니 까짓게 뭔 대접을 받으려고 하냐. 경위가 계급이냐. 나이 처먹은 게 벼슬이냐” 따위의 욕설을 하기도 했다.
B 씨의 갑질로 A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정도가 됐다. 참다 못한 A 씨는 B 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내부 감찰계에 신고했지만 그 결과는 더 황당했다. 올해 1월 징계위원회가 열렸지만 B 씨는 사과 한 마디 없었고 가장 약한 징계수위인 ‘견책(시말서 제출)’ 처분만 받았다. 경찰 공무원 징계령 세부 규칙에 따르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비인권적 행위를 하면 중과실인 경우 감봉, 고의가 있을 경우 최소 정직 처분을 받는다. 견책은 정도가 약하고 경과실인 경우에만 내려지는 징계 수위다.
공직 사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늘고 있지만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수위가 약한 징계가 내려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해양경찰청의 경우 하급자에게 “도끼로 찍어 버린다, X발 X끼 말 안 듣네, 죽여 버리겠다” 등의 발언이나 모욕 행위·비인격적 처우를 한 경찰관들에게 견책 또는 감봉 1개월 등의 처분만 내렸다. 모 공공 기관은 지난해 하급자에 대해 인격비하·모욕·심부름·외설 발언 등을 한 공무원들 3명에 대해 감봉 1개월의 처분만 내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부문 갑질 대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는 공공 분야 갑질 근절 대책에 따라 각 기관에 갑질 행위 대응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게 하고 있지만 ‘셀프 징계’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갑질 문제를 총괄하는 권익위도 내부 갑질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권익위가 실시한 익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내부 갑질 경험 건수는 2019·2020년(5월 기준) 33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공공 기관에서 직장 갑질이 일어나면 상위 기관에서 문제를 자세히 조사하는 권한이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며 “공무원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 것 역시 재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진혁 기자 bread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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