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더는 ‘판소리’란 단어에 한복과 부채, 나이 지긋한 소리꾼만 떠올리지 않는다. 다양한 변주와 실험은 ‘개성 넘치는 조선 팝’과 이에 열광하는 젊은 관객을 끌어들였고, 이 친숙함은 원형(국악)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본연의 깊이를 가져가면서도 끊임없이 참신한 도전으로 관객과 만나야 하는 국악인들의 어깨도 점점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국립창극단이 2030 실력파 소리꾼의 시리즈 공연 ‘절창(絶唱)’을 기획한 이유도 여기 있다. 소리의 참맛을 전하면서도 시대에 걸맞은 참신함을 모색하는 시간, ‘뛰어난 소리’를 뜻하는 절창은 창극단의 간판 김준수(30)와 유태평양(29)의 ‘수궁가’로 포문을 연다. 창극단 투톱의 출격 소식에 티켓은 벌써 매진됐다.
7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신하의 충심(忠心)이 아닌 끊임없이 역경과 마주하는 토끼와 별주부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새로운 수궁가를 예고했다. 절창은 수백 년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판소리 한 바탕’을 새로운 시도와 함께 깊게 들여다본다. 첫 공연에서는 완창 시 3~4시간이 소요되는 수궁가를 100분으로 압축, 토끼와 별주부의 팽팽한 관계에 중점을 두고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유태평양은 “수궁가의 충 주제가 우리 또래들이 거리낌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마음에 와 닿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토끼 간을 구하려는 별주부나 살기 위해 도망치는 토끼나 계속 역경을 건너고 또 건넌다”며 “고난과 잠깐의 행복, 또 고난을 오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오늘의 청춘이 보였다”고 변주의 배경을 설명했다. 동시대 관객과의 접점·소통을 고민해 온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접근이었다.
김준수는 전남무형문화재 29-4호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로 지난 2013년 창극단에 입단했다. 창극 ‘춘향’의 몽룡을 비롯해 ‘패왕별희’의 우희, ‘트로이의 여인들’의 헬레네 등 성역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것은 물론, 퓨전에스닉밴드 ‘두번째달’과의 음반 작업, 방송 프로그램 출연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태평양은 여섯 살이 되던 해 ‘흥보가’를 3시간 30분간 최연소로 완창한 실력파다. 2016년 국립창극단 입단 후 창극 ‘심청가’의 심봉사와 ‘춘향’의 방자, ‘흥보씨’의 제비 등 감초 역을 맡아 독보적인 존재감을 키워왔다. 여러 완창 무대를 경험하며 다져온 탄탄한 소리는 물론, 재즈·춤·타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섭렵해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풍부한 소리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무대에는 젊은 두 소리꾼의 아이디어가 대거 녹아들었다. 예컨대 소리꾼들의 움직임인 ‘발림’을 대폭 강화했다. 김준수는 “통상의 판소리에서는 발림이 소리의 부수적인 움직임 정도로 여겨져 왔는데, 이 동작이 돋보이는 장면을 대목 안에 넣고 싶었다”며 “남인우 연출님이 이 의견을 반영해 ‘소리꾼이 저렇게 소리를 내면서 움직일 수 있단 말이야’라고 할 법한 장면을 만들어주셨다”고 귀띔했다. 이 밖에도 두 사람은 단순히 역할에 따라 소리를 나눠 부르는 분창(分唱)에서 탈피해 판소리 장단에 맞춰 가사를 주고받는 입체창의 다양한 방식으로 합을 맞춘다. 서로 다른 스승에게 소리를 배워 두 사람이 부르는 수궁가의 음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둘은 굳이 이 ‘다름’을 하나로 합치려하지 않았다. “각자 특색 살려서 불러보자.” 그렇게 길 다른 두 개의 소리가 만나서 또 다른 길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젊은 소리꾼이 설 전통 판소리 무대가 많지 않기에 절창에 거는 두 사람의 기대도 크다. 김준수는 “기존 완창 판소리가 명창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한 무대였다면 절창은 우리 또래가 관객과 쉽게 소통하고 즐기면서 전통 판소리 무대를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젊은 소리꾼, 관객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공연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래서 더 부담 큰 첫 타자이기도 하다. 유태평양은 “다음 공연이 없어지면 우리가 못해서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느냐”며 “절창이 ‘뛰어난 소리’가 아닌 ‘절절한 소리’, ‘젊은 창’의 의미인 줄로만 알았다”고 농담 섞인 푸념을 털어놓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수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어느 때보다도 강한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창극과 방송 출연으로는 풀지 못하는, 소리 본연의 깊은 맛에 대한 갈망이 컸던 탓이다. 두 사람은 이번 공연에서 직접 작창한 소리도 선보인다. 여전히 ‘절창’이라는 타이틀이 무겁게만 느껴진다는 둘은 “‘뛰어난 소리’가 아니라 ‘그 지점에 다가가는’ 의미로 이번 무대를 꾸미겠다”고 웃어 보였다. 4월 17~18일 국립극장 달오름.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