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박형준 국민의힘 당선인이 서울특별시장과 부산광역시장 4·7재보궐선거에서 박영선·김영춘 민주당 후보를 큰 격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전국 선거에서 4연패(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를 끊어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이라는 거센 민심의 역풍을 맞아 대대적인 쇄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8일 오전 1시 기준 개표 결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오 당선인이 57.27%를 기록해 박 후보(39.52%)를 17.75%포인트로 앞서고 있다.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 당선인은 62.90%를 기록해 김 후보(34.17%)를 크게 따돌리고 있다. 서울과 부산 모두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득표율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당락은 사실상 결정됐다. 두 당선인은 자축을 자제하고 승리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오 당선인은 이날 자정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통속에 계시는 시민들을 보듬으라는 지상명령으로 받들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박 당선인도 “겸손한 자세로 시정에 임해 시민들이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與, 176석 공룡정당 “책임지겠다” 개혁 독주
21대 국회 열고 ‘코로나 극복’ 57.8조 추경
헌정 초유 18곳 상임위 독식·가장 늦은 개원
코로나·부동산·기업규제·공수처 단독 처리
‘일방통행’ 비판받으면서도 개혁법안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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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할 필요 없다. 국민이 선택한 177명 의원의 역량과 의지를 믿고 꿋꿋하게 앞으로만 가면 된다(김두관 의원)”
거대여당이 1년 만에 국민들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4월 21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국회의 절대과반인 180석(현 174석)을 차지했다. 입법 무대에서 민주당은 개헌(200석 이상)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휘두르는 위치에 올랐다. 민주당은 “정책실패의 책임을 야당이 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독주를 택했다.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18석을 모두 민주당이 가져갔다. 법안을 심사할 모든 상임위 운영을 거대여당이 맡은 것이다. 민주당의 독주는 야당의 거센 저항을 불렀다. 결국 21대 국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늦은 7월 16일에야 개원했다.
민주당은 시작된 무대 위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내달렸다. 거대여당은 국민들이 몰아준 힘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극복 △부동산 시장 안정 △개혁법안 등을 처리하는데 집중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 지 한 달여 만에 야당 없이 역대 최대규모인 35조 1,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은 ‘코로나 극복’에 방점이 찍힌 총선의 결과를 내세워 “국회가 국민의 엄중한 명령에 답을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에는 59년 만에 4차 추경(7조 8,000억 원), 올 3월에는 약 14조 9,000억 원 등 1년 간 57조 8,000억 원의 추경을 편성해 코로나 극복에 매달렸다.
‘뜨거운 감자’인 부동산 법안 처리는 불도저와 같았다. 민주당은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보름 만에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을 속전속결로 통과시켰다. 거대여당은 “국민의 명령”이라고 부른 검찰개혁과 재벌개혁도 주저함이 없었다. 여당은 법을 바꿔 야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후보추천권을 박탈했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맞섰지만 무력했다. 재계가 해외 거대 자본의 공격을 우려하며 재고를 읍소한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복합기업감독법 제정안)도 ‘공정경제’을 내세워 일방 처리했다.
거대여당의 개혁 의지는 21대 국회 최우선 과제로 통과시킨 ‘일하는 국회법’에 잘 반영돼있다. 국회가 없던 3월과 5월에 임시회를 추가하고 월 2회 이상 상임위를 여는 것을 법으로 못 박아 사실상 1년 내내 국회를 열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패색이 짙어지면서 일방통행식 국정과 국회 운영에도 제동이 걸렸다. 더 나아가 11개월 남은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이 올 가능성이 높아 현재권력(친문)과 미래권력(이재명 경기도지사)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野, 김종인 체제 “세상이 변했다” 대대적 개혁
‘기본소득·약자와의 동행·경제민주화’ 앞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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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비판에도 ‘삭발·단식’ 장외투쟁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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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고. 세대가 바뀌었다. 변화와 혁신의 DNA를 심겠다(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보수야당의 혁신이 국민들에게 평가받는 날이 왔다. 강경보수세력인 이른바 ‘태극기부대’와 광화문을 메운 보수야당은 21대 총선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참패를 당했다. 102석. 개헌을 겨우 저지하는 수준의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무너진 보수야당의 키를 쥔 김종인 위원장은 “보수, 자유 우파 타령 말라”고 일갈했다. 그는 보수야당에 “빵 먹을 자유”를 들먹이며 ‘물질적인 자유’인 민생이 보수정당의 가치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진보보다 더 앞서 가는 ‘진취적인 정당’, 이념을 벗어난 ‘탈이념 실용주의’을 내세워 혁신에 경주했다.
김 위원장은 당 소속 의원 가운데 절반을 넘는 초선을 모아 두고 “테슬라를 보라”며 창조적 파괴를 주문했다. 그는 “보수라는 말 자체가 기득권이 됐다”며 “약자의 편에 서자”고 강조했다. 정강정책에 △약자와의 동행 △기본소득 △공정한 사회 구현 △양성 평등사회 △미래 변화 선도·경제혁신 등을 명시했다.
김 위원장의 광주행은 보수정당의 환골탈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는 지난해 8월 보수정당 대표급 인사로는 처음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그는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 발언에 우리 당이 회초리를 들지 못했다. 잘못된 언행에 당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진실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죄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전남 수해 현장에서 수해 복구를 도왔고 전체 비례대표 당선권의 4분의 1을 호남 인사로 배정하기로 약속했다. 영남’ 지역 정당이 아닌 전국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호남 구애’를 아끼지 않았다. 9월에는 미래통합당의 이름을 묻고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꿨다. 김 위원장은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당, 약자와 함께하지 못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당, 이념에 매몰된 정당, 계파로 나눠 싸우는 정당으로 인식돼왔다”며 “이제 국민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구속돼 재판에 오른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사과를 단행했다. 대국민사과문에는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 쇄신으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담았다. 그리고는 당무감사를 통해 ‘총선 부정 선거’를 주장하던 강성보수인사들을 갈아치웠다.
야당은 거대여당의 입법독주에 무기력하게 밀리는 모습을 일년 내내 보여왔다. 그럼에도 삭발과 단식같은 과거 방식의 장외투쟁은 나서지 않았다. 대신 원내에서 목소리를 높여 반대했다. 강성보수·기득권정당의 이미지를 버리고 입법으로 민생을 챙기는 실용주의 전국 정당으로 탈바꿈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다.
4·7일 재보궐선거의 승기를 잡으면서 보수야당은 일단 국민들에게 쇄신의 성과를 인정받게 됐다. 또 내년 대선에서 정권탈환의 희망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새 지도부를 뽑을 전당대회와 이번 선거를 함꼐 이끈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합당을 잡음없이 마무리해야 하는 숙제도 안게 됐다.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범죄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애초에 야권이 유리한 구도였다. 이를 망각하고 야권이 선거 승리에 도취해 내부에서 당권 투쟁 등 분열이 일어날 경우 민심은 빠르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정권에 대한 심판론과 야권 단일화, 선거 과정에서 여당의 지속적인 의혹 제기에 대해 국민들의 거부감이 결합돼 승리하게 됐다”며 “만약 국민의힘이 주도해서 선거의 승리를 가져간다고 하는 순간, 승리에 도취돼서 과거로 돌아가는 위험성이 농후하다”고 진단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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