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앞으로 정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물가 안정이 첫째로 꼽혔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5%로 1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0.4%, 국내 생산 물품과 서비스 전체의 물가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0.9%로 물가 하락 국면으로 접어드는 현상인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 충격을 겪었던 지난해도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았으나 올해 들어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 자체는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인플레이션의 확대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대파·사과 등 농축수산물은 두 자릿수로 뛰어 국민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매우 높다. 생산이 늘어 안정되는 품목이 있으나 국제 곡물 가격이 올라 먹거리 가격 상황이 크게 나아지기 힘들다. 통계적으로는 지난해 4∼5월 기저 효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당분간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1년 뒤 시점의 물가를 내다보는 기대인플레이션도 2.1%로 상승 추세다.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 기대인플레이션은 3.09%다. 오는 4∼5월에는 실제 물가도 3%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물가 상승을 걱정할 정도가 아니며 인플레이션 목표를 일시적으로 초과하더라도 인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교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경고한다. 연준의 팽창 정책으로 돈이 많이 풀렸으며 재정지출 확대로 적자 규모가 GDP의 10%에 이른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960년대에 1% 물가 상승률이 몇 달 만에 6%로 올라간 경험도 상기시켰다.
미국이 선택한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연준은 제로금리 정책을 2023년까지 유지하고 양적완화(QE) 정책도 지속할 방침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 회복에 우선순위를 두는 정책을 시행한 결과 지난달 일자리가 92만 개 늘었고 실업률은 6.0%로 낮아졌다. 지난해 최저를 기록했던 3.5%와 차이가 있지만 코로나19 직후 14.7%까지 높아졌던 것에 비교하면 크게 개선됐다.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6.4%로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정책 환경은 다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인 6.0%보다 훨씬 낮은 3.6%다. 실업자가 135만 명, 실업률은 4.9%로 부양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기축통화가 아닌 까닭에 미국과 같은 무제한의 통화팽창 정책을 펴면 인플레이션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가계 부채가 2,000조 원 규모로 GDP의 100%에 이른다. 내수 부진의 중심이 대면 서비스업인데 코로나19가 잦아들지 않아 섣부른 내수 진작책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딜레마에 빠진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 연기 등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증요법을 취하고 있는데 문제 해결책은 못 된다. 경기가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소비자의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등으로 물가가 더 오르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영향으로 경제정책이 우왕좌왕하면 정말 큰 문제다. 주가나 자산 가격의 거품을 조장하는 정책이 나오게 해서도 안 된다.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단기적인 현상이나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경제 안정과 회복을 추구해나가는 정책을 펼치도록 해야 한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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