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정권 교체를 확신하는 장밋빛 전망이 야권 내부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 직전 터져 나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 여권의 실정이 선거 결과에 중대 변수로 작용해 야당이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재보선은 전임 시장들의 ‘성추문’ 사건이 발단이 된 만큼 민심의 추가 일찌감치 야권에 기울어 이번 선거를 내년 대선의 가늠자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의 승리라고 하기보다는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라며 “부동산만 패배의 원인으로 보면 좁은 시각으로 분석한 것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오만과 독주, 기득권 지향적인 태도가 이번 선거 결과를 만든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 교수는 “국민의힘이 이번 선거를 통해 냉전·수구적인 한계에서 벗어난 점은 분명하지만 발광체가 될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선거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은 정책과 공약을 통해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기보다 외부적인 상황들이 유리해지면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특히 LH 사태로 성난 민심이 ‘정권 심판론’으로 이어졌고 그 반사이익을 오 당선인이 고스란히 누릴 수 있었다. 더구나 LH 사태 상황에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의 ‘내로남불’식 전세 계약건이 알려지면서 오 당선인으로의 지지율 쏠림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오 당선인이 보수 정당 내에서 중도 노선을 견지해온 데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이끈 뒤로 강성 보수 색채가 옅어지면서 중도층 표심을 끌어온 것은 주효했다. 그럼에도 강성 지지층을 비롯해 이념 성향이 강한 소속 의원들의 행보는 여전히 불안 요소로 꼽힌다. 오 당선인조차 문재인 대통령을 ‘중증 치매 환자’라고 지칭하거나 전광훈 목사 등 편향성이 강한 집회에 참석했던 것들은 국민의힘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강성 지지층에 휘둘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가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과거의 ‘꼰대’ 실수를 기억해 언제든지 중도층 유권자가 이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을 의식해 김 위원장도 이날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두 당선인이 민주당 후보에게 크게 앞서자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표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자신들이 잘해서라기보다 정부 여당의 실정이 승리의 원인이라며 자세를 낮추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민심이 폭발한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인도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다”라며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민심이 이 정권의 실정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잘해서 지지한 것보다 잘하라는 채찍으로 생각한다”고 몸을 한껏 낮췄다.
국민의힘이 서울과 부산에서 압승을 했음에도 이처럼 승리에 도취되기보다 자세를 거듭 낮춘 것은 내년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이번 재보궐선거의 특성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문가들은 재보선 승리에 만족할 경우 내년 대선은 오히려 민심의 선택을 받기 힘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야권 후보 단일화 이전 등 선거 초반에는 여야 후보가 박빙 양상을 보였지만 LH 사태 등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선거의 흐름이 급격하게 변했다는 점에서 대선까지 혁신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 국민의힘 내부에서 승리의 원동력을 갖췄다기보다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한 선거였던 셈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은 교만과 폭정, 무능과 위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패배했다”며 “국민의힘은 이 같은 민주당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승리한 만큼 교만하지 않고 야권 재편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실제 LH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달 4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8.3%, 오 당선인이 36.6%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LH 사태가 벌어지고 성난 부동산 민심이 급격히 커졌다”며 “LH 사태만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부 여당에 대한 누적된 공정에 대한 분노와 누적된 독선에 대한 분노, 누적된 내로남불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이 만들어낸 분노가 작용한 선거였다”며 “국민의힘도 극단적 세력과 거리를 뒀고, 김 위원장이 호남에 공을 들이면서도 안철수 대표와의 비교적 매끄러운 단일화 과정 등 내부 혁신 노력도 분명히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재묵 교수도 “4연패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모멘텀은 되지만 임기 1년인 서울·부산시장의 실익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그동안의 쇄신과 혁신 노력이 계속돼야만 내년 대선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 이희조 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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