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중국인들의 마음에는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에서 연달아 패한데다 영국·미국 등 제국주의 열강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의화단운동은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민족주의를 일깨우며 반외세·반서양 감정을 부추겼다. 1900년 의화단은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도와 서양 오랑캐를 멸하자)’을 외치며 기독교 신자들을 학살한 데 이어 베이징에 있던 열강들의 공관까지 공격했다. 열강들은 청나라 조정에 의화단 진압을 요구했지만 당시 실권자인 서태후는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오히려 의화단과 손잡고 열강들에 선전포고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일본 등 8국 연합은 연합군을 결성해 단숨에 베이징을 함락시켰다. 전쟁은 불과 2개월 만에 끝났다. 청나라는 거액의 배상금 지급은 물론 베이징에 외국 군대의 주둔을 인정하는 신축조약을 맺어야 했다. 청나라는 이 불평등조약 이후 사실상 열강들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과 동맹국들이 뭉쳐 중국을 견제하는 반중 연합 전선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일본·인도·호주 4국 연합체인 쿼드(Quad)가 인도 동부 벵골만에서 프랑스와 함께 실시한 라페루즈 합동 해상 훈련이 대표적이다. 영국이 항공모함인 퀸엘리자베스호를 연내 인도양 및 동아시아에 파견해 일본·인도 등과 해군 합동훈련을 벌이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중국 온라인에서 쿼드 플러스(쿼드+프랑스·영국·독일 등)를 120년 전의 8국 연합에 빗대 ‘신8국 연합’이라고 지칭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높다. ‘오늘날의 중국은 8국 연합에 침탈당하던 1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라는 반발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로 소수민족 등의 인권을 외면하고 있다. 주변국을 위협하는 패권주의·팽창주의는 도를 넘고 있다. 반면 중국에 맞서 동맹을 강화하는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려고 한다.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양상이다. 우리도 국제사회와 공고한 연대를 맺고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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