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은 지난 2009년부터 브리티시 오픈(디 오픈)을 여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 챔피언십(AAC)을 개최해왔다. 아시아 골프의 미래 세대를 육성한다는 취지다. 오거스타내셔널은 참가 선수들의 항공과 숙박료 등을 전액 부담하고 우승자에게는 이듬해 마스터스 출전 기회를 준다. 이 대회는 2016년 인천 송도의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리기도 했다.
마쓰야마 히데키(29·일본)는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 AAC 정상에 오르며 마스터스와 인연을 맺었다. 2011년 처음 출전한 마스터스에서 아마추어 1위를 기록하며 실버컵을 차지했다. 당시 동일본 대지진의 참화를 딛고 출전해 더욱 주목됐다. 그는 지진 피해를 가장 심하게 당한 미야기현 센다이의 도호쿠후쿠시대에 재학 중이었다. 그의 학교도 폐허가 됐다. 마쓰야마는 당시 “피해 복구와 재기에 힘쓰는 센다이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해 감동을 줬다. 그로부터 꼭 10년 후, 마쓰야마는 마스터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그린재킷’을 입었다. 오거스타내셔널의 ‘아시아 프로젝트’로 따지면 12년 만의 결실인 셈이다.
12일(한국 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 4라운드. 마쓰야마는 버디 4개, 보기 5개로 1오버파 73타를 쳤다.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적어낸 그는 2위 윌 잴러토리스(미국·9언더파)를 1타 차로 따돌렸다. 우승 상금은 207만 달러(약 23억 원)다.
마쓰야마는 이번 우승으로 2017년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제패 이후 3년 8개월 만에 승수를 추가하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6승째를 달성했다. 아시아 선수가 이 대회 정상에 오른 것은 마쓰야마가 최초다. 이전 최고 기록은 지난해 임성재(23)가 수확한 준우승이었다. 아시아 선수의 남자골프 메이저 제패로 따지면 2009년 양용은(49)의 PGA 챔피언십 이후 두 번째다. 일본 골프계는 4일 가지타니 쓰바사(17)가 오거스타내셔널 여자 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2주간 겹경사를 맞았다. 오거스타내셔널 여자 아마추어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이 여성 골프 발전을 위해 2019년 창설한 대회다.
마쓰야마는 오는 7월 열리는 올림픽의 골프 금메달 후보로도 떠올랐다. 도쿄 올림픽 골프 경기가 열리는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은 마쓰야마가 2010년 AAC 대회 때 우승한 곳이다. 당시 2위를 5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일본은 축제 분위기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훌륭한 쾌거다. 일본의 모든 분에게 용기와 감동을 선사했다”고 평가하는 등 유명인들은 마쓰야마의 마스터스 우승을 앞다퉈 축하했다. 메이저 최다승(18승) 기록 보유자인 잭 니클라우스(미국)는 트위터를 통해 “일본 남자 선수 최초로 마스터스를 제패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건넸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도 “대단한 업적을 이룬 데 대해 당신과 당신 나라에 축하를 전한다”고 했다.
이날 4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마쓰야마는 첫 홀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이후 2번과 8번, 9번 홀에서 버디 3개를 골라냈다. 11번 홀이 끝났을 때 경쟁자들과의 간격을 6타 차까지 벌리기도 했다.
결정적인 위기를 맞기도 했다. 15번 홀(파5)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 뒤 물에 빠뜨린 것이다. 동반자인 잰더 쇼플리(미국)가 12~15번 홀에서 4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2타 차까지 맹추격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국 분위기는 물에 빠지고도 보기로 막아내 피해를 최소화한 마쓰야마 쪽으로 흘렀다. 기세를 올리던 쇼플리가 이어진 16번 홀(파3)에서 오히려 티샷을 물에 빠뜨리며 무너졌다. 이 홀에서 마쓰야마도 1타를 잃었지만 쇼플리는 트리플 보기를 적어내고 말았다. 마쓰야마는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도 보기를 냈했으나 우승에는 지장이 없었다. 마쓰야마는 “정말 행복하다”며 “일본의 어린 친구들이 내 발걸음을 따라오면 좋겠다. 개척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마스터스에 첫 출전한 잴러토리스가 2타를 줄이며 준우승(9언더파)을 차지했고 쇼플리는 조던 스피스(미국)와 함께 7언더파 공동 3위로 경기를 마쳤다.
김시우(26)는 2언더파 공동 12위를 기록해 상금 21만 8,500달러(약 2억 4,000만 원)를 받았다. 톱 10에 들지 못했지만 자신의 이전 최고 성적(2019년 공동 21위)을 뛰어넘었다. 내년 출전권도 확보하면서 연속 참가 기록을 6년으로 늘릴 수 있게 됐다. 김시우로서는 2라운드 때 홧김에 퍼터를 바닥에 내리쳐 클럽이 망가지면서 네 홀을 우드로 퍼트하는 등 개인적으로 곡절을 겪었던 다섯 번째 도전이었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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