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남중국해의 휘선(Whitsun) 암초에 220여 척의 중국 어선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이들은 어선의 고리를 잇는 연환계(連環計)로 거대한 방벽을 만들어 암초 일대를 점령했다. 이 해역은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다. 사실상 필리핀에 대한 도발 행위였다. 필리핀 정부는 이들 선박이 인민해방군 통제를 받는 ‘해양민병대’ 소속이라며 즉각 퇴거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누구의 도발도 두렵지 않다”는 중국 국방부의 협박성 발언만 접했을 뿐이다.
휘선 암초는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 북쪽에 위치한 부메랑 모양의 무인도다. 길이 13㎞, 면적 10㎢의 작은 섬으로 필리핀에선 ‘줄리안 펠리페 암초’로 불린다. 이곳은 필리핀에서 약 320㎞ 거리에 있는 반면 중국과는 약 1,060㎞나 떨어져 있어서 지리적으로 필리핀에 훨씬 더 가깝다. 그런데도 중국은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필리핀은 물론 베트남과도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2016년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역사적·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이마저 무시한 것이다.
휘선 암초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썰물 때만 수면 위로 드러났다가 만조 때 물에 잠기는 ‘간조 노출지’였다. 하지만 이후 100m 정도의 사구가 생겨 조석 간만과 무관하게 관측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전략적 가치가 한층 높아진 셈이다. 외신들은 중국 어선들이 이미 암초 곳곳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했다고 전하고 있다. 약소국을 철저히 무시하는 패권주의를 드러낸 셈이다.
필리핀은 이달 초 중국 어선을 몰아내기 위해 한국에서 들여온 FA-50PH 경공격기를 해상에 투입하는 등 무력 시위를 벌였다. 취임 이후 친중(親中) 행보를 보였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다급한 나머지 미국과 합동 군사 훈련을 재개하고 미군의 필리핀 주둔을 계속 허용할 방침이다. 한국도 이어도 관할 수역을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우리도 국익과 안보를 지키려면 중국의 영토적 야심과 팽창주의에 휘둘리지 않도록 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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