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새 시즌 개막전인 롯데렌터카 여자오픈(롯데 스카이힐 제주CC)에서는 한 아마추어 추천선수의 활약이 눈길을 끌었다. 예측 불허의 강풍과 단단한 그린, 어려운 핀 위치 등 언니들도 혀를 내두른 가혹한 환경에도 이 선수는 3라운드에 2언더파를 쳐 공동 7위까지 올라갔다. 더블 보기, 트리플 보기가 속출한 14·15번 홀을 모두 파로 넘어가는 등 침착한 플레이가 돋보였다.
주인공은 고3 국가대표 황유민(18). 선두 이소미와 7타 차라 최종 4라운드 결과에 따라 톱 5 이상도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다음날 리더 보드에서 황유민은 기권 처리돼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제는 갑작스러운 편도염이었다. 2라운드 뒤부터 살짝 따끔거리던 목은 3라운드를 마치자 많이 부어올랐다. 열도 조금 올랐다. 황유민은 결국 최종 라운드 아침에 기권을 선언하고 말았다.
쉽게 얻기 힘든 정규 투어 출전 기회인 데다 성적도 좋았으니 심한 고열이 아닌 이상 이 악물고 출전을 강행할 만도 했다. 하지만 황유민은 기권에 대해 “아쉽지만 잘한 결정”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14일 통화에서 “(코로나19로) 요즘 너무 예민한 시기이니 조심하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 저 하나 때문에 혹시라도 대회가, 투어가 시끄러워진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황유민은 의무 사항이 아닌데도 최종 라운드가 열린 11일 오후에 제주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다음날 음성 판정을 확인한 뒤에 서울로 올라왔다.
황유민은 “준비를 많이 했는데 (4라운드를 못 뛴 게) 아쉽고 허무해서 조금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하나의 경험이라고 받아들이려 한다”면서 “3라운드까지 잘 친 걸로 만족하고 다음 대회에서 더 잘 하면 된다고 계속 마음먹고 있다”고 했다.
KLPGA 정규 투어 출전은 이번이 여섯 번째였다. 앞서 2019년 KG·이데일리 오픈에서 공동 19위, 지난해 휴엔케어 여자오픈에서 공동 26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지난해 매경·솔라고배와 스포츠조선배에서 우승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황유민은 이듬해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베스트 스코어인 86타를 치면서 선수의 길로 진로를 정했다. 고1 때부터는 전 국가대표 감독인 한연희 씨한테서 배우고 있는데 특히 아이언 샷과 퍼트 기량이 좋다. 부모님이 모두 금융결제원 전산 부서에서 근무 중이며 황유민이 프로 무대에 진출하면 엄마·아빠 중 한 명은 딸 뒷바라지에 ‘올인’할 계획도 있다.
황유민은 “내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큰 목표”라며 “종종 정규 투어 대회에 나가면 꾸준히 톱 10에 들고 싶다. 좀 더 열심히 가다듬으면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정규 투어 정식 데뷔는 2023년을 목표로 잡고 있다. 황유민은 “김효주, 김세영 선배 같은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효주 선배님은 플레이도 똑똑하게 잘 하시는데 되게 겸손하세요. 어른들한테 90도로 인사하는 걸 보고 ‘나도 나중에 유명한 선수가 되더라도 겸손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음 달 또 한 번의 정규 투어 대회 출전을 바라보는 황유민은 6월 말에는 아마추어 대회인 강민구배 우승을 노린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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