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콘텐츠가 가장 빠르게 확산되는 곳은 책 시장이다. 지난 2000년대 들어 디지털 기기 발달과 함께 성장하기 시작한 국내 오디오 북 시장 규모는 오디오 콘텐츠에서의 MZ세대의 호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지난해 기준 약 300억 원대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디오 북 서비스 업체인 윌라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유료 구독자 수가 무려 800% 이상 급증하고 제공하는 오디오 북 콘텐츠도 90%가량 늘어났다. 독서 플랫폼 업체인 밀리의 서재는 현재 1,000권이 넘는 오디오 북을 서비스하고 있는데 독자들의 수요가 계속 증가하면서 콘텐츠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인공지능(AI)이 읽어주는 오디오 북 100종을 출시한 데 이어 이달부터는 매달 500종의 AI 오디오 북을 추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도서 분야도 다양하다. 고전문학의 대표 격인 ‘노인과 바다’ ‘데미안’부터 최신 베스트셀러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 ‘금융의 미래’까지 오디오 북으로 즐길 수 있는 선택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김태형 밀리의 서재 유니콘팀장은 “회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성향, 수요 등에 따라 오디오 북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색다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오디오 북은 비독서 인구의 독서 장벽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밀리독서연구소의 내부 분석 결과 책으로 바로 읽기 어려울 것 같은, 완독 확률이 낮고 시간이 걸리는 책일수록 오디오 북으로 먼저 접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오디오 콘텐츠는 활자를 넘어 시각 요소가 중요한 드라마나 연극 분야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네이버 오디오 클립의 오디오 드라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은 최근 인기 웹툰·웹소설이 원작인 ‘바른 연애 길잡이’ ‘울어 봐, 빌어도 좋고’ ‘재혼황후’를 잇따라 오디오 드라마로 공개해 ‘듣는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연계에서도 낭독을 통한 작품과의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극단은 2018년부터 새로운 희곡을 발굴해 낭독 공연을 하는 ‘창작공감:희곡(이전 명칭 희곡우체통)’을 진행해왔다. 익명으로 투고된 희곡 가운데 초대작을 선정해 전문 배우들이 낭독을 하는 공연이다. 매년 6~8회 진행돼온 낭독회의 무료 선착순 티켓은 매번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감됐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실연과 달리 낭독 공연은 관객들의 상상의 여지가 더 열려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다”며 “낭독 공연만의 재미를 느껴 여러 번 참석하는 관객도 꽤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멀티태스킹이 오디오 콘텐츠의 매력으로 꼽히지만 낭독 공연과 오디오 드라마는 오히려 시각 요소를 배제하고 오롯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 높은 집중력과 상상력이 발휘되는 셈이다.
이처럼 오디오 콘텐츠 분야는 해마다 인기와 함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2,100만 달러(약 256억 원)에 달했던 국내 오디오 콘텐츠 시장은 2024년 9,160만 달러(약 1,115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골드만삭스는 2019년 기준 220억 달러였던 전 세계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2030년까지 75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거대한 ‘듣기 붐’을 주도하는 것은 MZ세대다. 문화 콘텐츠의 주소비층이면서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플랫폼에 자연스레 노출돼 유행과 변화 속도에 빠르게 적응하는 세대다. 미국 대표 라디오 방송 ‘아이하트미디어(iHeartMedia)’에 따르면 MZ세대는 매주 18시간씩 팟캐스트를 듣는다. 매일 2~3시간은 오디오 콘텐츠를 청취하는 것이다. 영상 플랫폼 기반의 매체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듣기’ 문화를 소비하는 데 열광하는 것은 이것이 추억을 되짚는 ‘레트로’가 아닌 ‘신선한 경험'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듣기 콘텐츠의 특성이 자신의 확고한 취향을 자랑하면서도 삶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성향과 들어맞았다는 해석도 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 관계자는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MZ세대에게 오디오 콘텐츠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한데다 기존 장르와의 다채로운 결합, 다양한 주제와 형식에 따른 취향의 세분화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힙한 아이템’인 에어팟 같은 음향 장비의 대중화가 맞물리면서 오디오 콘텐츠 소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보는 사람들은 1318(13~18세)세대의 동향에도 주목한다. 차세대 소비층인 이들 사이에서도 ‘듣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이버 오디오 클립의 경우 올 1월 기준 10대(13~18세) 사용자의 오디오 클립 재생 수가 전년 대비 20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 연령의 재생 수 증가율(137%)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듣는 문화 예술 소비 트렌드에 발맞춰 최근에는 활자나 이미지를 단순히 ‘음향 전환’하는 차원을 넘어 보다 진화한 콘텐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시각예술인 미술과 소리의 만남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에서 개인전 ‘네버랜드 사운드랜드-소리산책’을 열고 있는 작가 권병준은 ‘사운드 아트’를 추구한다. 소리가 감상자를 감싸는 앰비소닉(Ambisonic)을 활용한 입체음향관, 국악기 편경(編磬)의 음계로 그려낸 풍경, 근거리위치인식 시스템(LPS)을 이용한 작품인 ‘다문화 가정의 자장가’ 등 소리 작품이 전시장을 채웠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소리가 상상력을 높이며 연주와 놀이를 통해 예술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면서 “작품의 소리가 주는 울림을 통해 관람자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후보 중 하나인 오민 작가는 음악을 전공한 미술가이고 성북구립미술관 등지에서 전시가 한창인 김승영 작가는 ‘오디오 설치 작업’으로 유명하다. 사실 ‘듣는 미술’ 혹은 ‘보는 음악’은 예술가들의 오랜 탐구 주제 중 하나다.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를 시작한 배경에는 음악을 시각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감각의 한계를 넘어선 창의성에 대한 시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도전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흔해진 오디오 북도 ‘더 실감나고 생생한’ 전달을 위해 새 아이디어를 더해가고 있다. 단순히 책의 내용을 읽어주는 데서 나아가 몰입감과 힐링 효과까지 내는 식이다. 윌라가 내놓은 신카이 마코토의 ‘날씨의 아이’ 오디오 북에는 빗소리, 천둥소리, 물방울 소리가 섬세하게 담겼다. 또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오디오 북에는 추리 스릴러에 어울리는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더했다. 윌라를 운영하는 인플루엔셜 문태진 대표는 “앰비언스(Ambience·분위기) ASMR이 마치 실제 사건 현장에 있는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소리 경쟁'은 앞으로 더욱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타 장르의 오디오 강화에 더해 ‘듣기 문화’의 터줏대감인 음악 스트리밍 업체들의 사업 확장도 본격화했다. 글로벌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가 연내 국내에서의 팟캐스트 서비스 론칭을 예고한 가운데 SK텔레콤 자회사인 드림어스컴퍼니의 플로(FLO)도 올 초부터 오디오 콘텐츠를 개시했고 기존 플랫폼인 멜론, 네이버 나우 등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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