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차량 지상도로 진입을 금지해 ‘택배 대란’이 일었던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집 앞 배송'을 16일 일시 재개했다. 항의의 의미로 세대별 배송을 중단하고 단지 정문 앞에 택배를 쌓아두자 입주민들의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택배노조는 이날 오후 강동구 상일동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조합원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조합원들의 마음을 추스르고 더 많은 노동자가 동참할 수 있도록 설득해 더 큰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단지 앞 배송’에 참여했던 택배기사들은 기자회견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노조에 따르면 입주민들은 "본사에 민원 넣겠다",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 "다른 택배사는 잘하는데 왜 타 기사 끌여들여 피해주느냐", "참 못됐다" 등의 문자를 수십통씩 보냈다. 노조 측은 응원 문자를 보낸 입주민도 있었지만 일부 주민들이 악의적인 문자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또 한 입주민은 지하철역 앞에 놓인 택배 사진을 찍어 "여기 있는데 왜 안 가져다 주느냐"며 배송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택배노동자 조합원들에게 비난, 항의, 조롱 등 과도한 문자·전화가 이어져 일부 조합원들이 심각한 정신 피해를 호소했다"며 "한 택배기사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면서 전날 택배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노조는 매일 밤 촛불집회를 시작한다. 아울러 '단지 앞 배송'에 동참하지 않은 CJ대한통운·한진 측에 개별배송 중단 참여를 촉구한다. 노조 측은 "갑질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이날부터 농성장을 설치해 매일 밤 시민단체와 무기한 촛불집회 연다"며 "택배사는 즉시 해당 아파트를 배송 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타 택배사와 협의가 성사되면 다음주부터 고덕동 아파트 개별배송을 중단하고 정문 앞 배송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도 예고했다.
현재 이 아파트는 10여 명의 택배기사가 담당 중이다. '단지 앞 배송'에 참가하지 않은 택배기사들은 이 중 절반 정도다. 노조는 이 같은 부분 참여로 인해 택배 원청사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택배사가 고덕 아파트를 배송불가지역으로 선포하지 않을 경우 오는 25일 파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만 노조는 입주자 대표 측과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강규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고 싶다는 입주민들의 마음을 존중한다"면서 "몇번의 사죄도 올릴 의향이 있으니 대화에 나서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고 말했다.
/박예나 인턴기자 ye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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