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일 보아오포럼 개막식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노골적으로 중국 입장을 편드는 언급을 했다. 문 대통령은 “어떤 나라도 이웃에 대한 배려 없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중국의 개발도상국 백신 지원을 치켜세웠다.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정책 기조를 상징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 이익 추구)’ 정신을 들어 “코로나 극복에도 중요한 원칙”이라고 거들었다. 이어 ‘자국 우선주의가 세계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장벽’이라는 취지로 발언해 미국 견제에 나선 중국을 지지한 셈이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코로나19 백신 조달에 비상등이 켜져 한미 공조가 절실한 시점에 문 대통령이 친중 행보를 보인 것은 잘못된 처사다. 게다가 내달 하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이런 메시지를 중국에 먼저 보낸 것도 문제다. 이 와중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0일 ‘한미 백신 스와프’ 협상 시도를 설익은 상태로 공개한 데 이어 21일에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며 미국의 협조를 호소했다. 정 장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가 도와줄 분야도 있다”며 반도체 지원 카드를 거론하면서도 백신 협력과 외교안보 정책은 별개라고 선을 긋는 등 모순된 발언을 쏟아냈다.
문재인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고집하다가 한미 동맹을 삐걱거리게 했고 미국의 ‘쿼드’ 참여 요청도 거절했다. 그래놓고 뒤늦게 백신 지원 협조를 요청하면서 ‘어려울 때 친구’ 운운하는 것은 군색한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회색 외교’를 접고 자유·인권·법치 등을 공유하는 가치 동맹을 복원하고 한미 동맹 강화에 나서야 한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달린 백신 조달 문제 역시 가치 동맹을 굳건히 한 뒤에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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