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백신을 앞세운 외교’ 의지를 밝히면서 한국이 추진하는 한미 백신 스와프가 불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신 지원을 ‘인접국→쿼드 참여국→동맹국’순으로 확정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쿼드에 가입하지 않은 한국은 미국의 백신 지원에서 후순위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백신 도입에 차질을 빚고 있는 우리 정부가 미국이 해외 지원 물량을 확정하기 전에 쿼드 참여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2일 미 국무부 등에 따르면 미국은 오는 2022년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최소 10억 회분의 백신 생산을 지원할 계획이며 자국 수요를 초과해 확보한 백신은 다른 나라에 지원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신 해외 공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이다. 지금 해외로 백신을 보내는 것을 확신할 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한국 등 여러 국가가 미국의 백신 지원을 바라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우선순위다.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의 안전을 위해 멕시코와 캐나다 등 인접국에 가장 먼저 백신을 지원하고 그다음은 안보 협의체 ‘쿼드’ 참여국인 일본·호주·인도를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는 다른 동맹국에 지원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후순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과 백신 스와프를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가능한 얘기냐’는 기자의 질문에 “멕시코·캐나다 등 인접국, 그리고 쿼드 (백신 지원) 조율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와 논의했다”고 답했다. 질문은 한국에 대한 것인데 정작 답변에서는 인접국과 쿼드 국가를 거론한 것이다. 미국 외교가에서는 이 같은 정황을 바탕으로 한국이 캐나다·멕시코는 물론 일본·인도·호주보다도 후순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백신 스와프와 관련해 우리 정부에 확실한 시그널을 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미일정상회담에서 쿼드와 백신 파트너십을 연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며 “백신 외교에 있어서도 쿼드를 활용하겠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지속해서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백신 스와프를 빠르게 확정하려면 미국 정부의 호응을 이끌어낼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표적 방안이 쿼드 가입이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쿼드나 미국 주도의 다자 연대에 적극 참여하면서 미국과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백신 지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며 “다음 달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같은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박 교수 역시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 명분이 부족한 상황인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쿼드 가입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백신 지원을 이끌 또 하나의 카드로 반도체·배터리 분야의 협력 강화도 거론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정부가 삼성전자 등 민간 기업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배터리 분야에서 미국에 필요한 지원을 하게 되면 백신 지원의 명분을 충분히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간 신뢰 회복을 위한 우회적 통로가 반도체 등 민간 영역의 협력 방안”이라며 “이러한 민간 협력이 강화되면 백신 분야에서도 협력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동효 기자 kdhyo@sedaily.com, 맹준호 기자 next@sedaily.com, 김혜린 기자 r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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