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체육에 빚이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급조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대표적이다. 북한 선수들이 우리 대표팀에 합류한 건 올림픽 개막을 불과 2주 앞둔 시점이었다. 우리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밀어붙이기에 논란이 일었는데 청와대 측은 “평화 분위기 조성이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정책 등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키웠다.
논란과는 별개로 단일팀이 남긴 화제성에 탄력 받은 걸까. 정부는 그해에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 유치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9년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공동 유치 의향서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IOC의 선택은 남북이 아니었다. 지난 2월 우선 협상지로 호주 브리즈번을 선정한 것이다. 서울·평양은 남북 관계 경색과 북미 관계 교착 속에 사실상 탈락했다. 결과가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올림픽 인기가 시들해진 요즘, 기후와 시설 면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브리즈번은 IOC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에서 단일 팀 이슈로 재미를 본 IOC지만 현재의 얼어붙은 남북 관계에는 굳이 베팅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동 유치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한 술 더 떠 ‘올림픽추진과’를 통해 ‘기습 선정’ ‘즉각 유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IOC가 약속이라도 어긴 것처럼 보인다.
이후 서울시장 선거가 있었다. 새 서울시장은 21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 공동 유치라는 정부 구상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데, 이에 대통령의 답변은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였다고 한다.
국내 체육계 상황을 보면 전혀 이르지 않다. 2019년부터 불거진 (성)폭력 문제에 이어 최근에는 학교 폭력 사태가 들불처럼 번졌다. 체육계 폭력을 뿌리 뽑을 ‘골든아워’라는 목소리가 많은데 정작 핵심 기관인 스포츠윤리센터는 헛바퀴만 돌렸다. 전문 인력의 태부족에 센터장(이사장)이 조직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며 사임하는 일도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뒤늦게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정상화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다.
정부는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하지 못한 파트너와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파트너는 귀를 닫은 지 오래고, 귀를 열더라도 평창 올림픽 때의 단일팀 구성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모적인 절차가 요구되는데도 질척해진 땅에서 발을 빼지 않고 있다. 1년이라는 짧지만 귀중한 시간을 눈앞의 일들을 살피는 데 쓰면 안될까. 생각해보면 스포츠 인권은 당장의 일이면서 10년, 20년 뒤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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