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 이태규 기자
지난해 초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90도 인사를 해 화제가 됐다. 당시 한 기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막기 위한 정부의 100조원에 달하는 금융대책을 호평했고 은 위원장은 단상에서 한 걸음 옆으로 나와 꾸벅 인사를 했다. 실제 그럴만 했다. 주가가 폭락하며 모두가 공포에 휩싸였던 당시, 금융위는 ‘100조’라는 숫자로 시장을 압도했고 급락하던 코스피는 발표 직후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최근의 금융위 태도를 보면 당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대표적이다. 준비 안된 금소법으로 금융사들이 패닉에 빠졌다는 본지 보도에 금융위는 ‘보도 반박’ 자료를 통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금융권 일각의 오해를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언론보도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금소법 시행 후 은행 창구에 대혼란이 왔다는 보도가 쏟아지자 금융위는 부랴부랴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열고 수습에 나섰다.
최근 암호화폐 사태도 마찬가지다. 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20%나 비싸게 거래될 정도로 과열됐지만 가장 업무 연관성이 높은 금융위 주도의 메시지는 없었다. 늑장 대응에 나섰으면 깔끔하게 진화했어야 하지만 논란만 낳았다. 전문가들의 주장은 암호화폐 하루 거래액이 코스피를 추월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으므로 최소한 시세조작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 위원장은 22일 국회에 출석해 “투자 손실을 정부가 보호해줄 수는 없다”며 ‘본인 책임 투자론’을 강조했다.
또 은 위원장은 암호화폐 투자를 두고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의 실체를 두고 전세계가 논쟁을 하는 가운데, 암호화폐 투자를 ‘잘못된 길’로 규정해 향후 정부 운신의 폭을 좁혔다. 민주당에서 은 위원장 발언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커지며 당정간 불협화음으로 인한 혼란도 커지고 있다.
물론 경제부처 개각설로 어수선한 것이 사실이다. 정권 말에 부처 간, 당정 간 이견을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약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에, 국민경제에 이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100조 대책’을 내놨던 금융위의 기민하고 깔끔한 대응을 기대한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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