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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용]화장품 용기, 애초에 재활용 쉽게 만들면 안 되나요

'화장품 어택'을 위한 시민 모니터링 참여해보니

십중팔구는 재활용 '불가'…제조사에 책임 물어야

화장품 용기의 90%는 재활용이 불가능해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합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4월 초의 화창한 봄날, 서울 망원동의 제로웨이스트 상점인 알맹상점에서 화장품 통 수백개를 파헤칠 4명이 모였습니다. 이날의 임무는 ‘화장품 용기 시민 모니터링’. 전국 각지의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부쳐온 빈 화장품 통을 제조사와 용기 소재별로 분류해 ‘화장품 어택’의 증거물로 제시하기 위한 임무입니다.

녹색연합과 여성환경연대, 알맹상점을 포함한 전국 주요 제로웨이스트 상점이 최근 수년 간 ‘화장품 어택’을 벌여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화장품 용기를 조사해봤더니 90%가 재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장품 기업들이 처음부터 재활용하기 쉬운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 소비자에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제조사가 나서 재활용 선순환 구조를 만들라는 겁니다. 이를 위해 관련 단체들은 전국적으로 빈 화장품 통 8,000여개를 모으고, 2주에 걸쳐 화장품 통을 분류하고 이를 기록하는 모니터링 작업을 벌여왔죠.

빈 화장품 통에 둘러싸인 팀 지구용 에디터.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의 설명에 따라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분류 방법은 언뜻 간단하게 들렸습니다. 우선 제조사를 확인해 기록합니다. 특히 판매량이 많은 상위 6개 제조사(이니스프리,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닥터자르트, AHC, 애경산업)는 기록 후 따로 분류하고, 나머지 제조사는 모두 ‘기타’로 기록. 그리고 빈 통마다 소재를 확인해 재활용이 되는지 아닌지를 기록하면 됩니다.

하지만 실제 분류 작업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습니다. 화장품 용기는 대체로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유리, 알루미늄,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페트(PET) 등의 원료로 만들어집니다. 단일 원료로 만들어졌다면 충분히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조건이 골치 아팠습니다. 예를 들어 페트병 중 투명한 페트병은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불투명 페트병은 안 됩니다. 투명 페트병이라도 겉에 라벨이 붙어 있다면 라벨을 떼어내야 하며, 겉면에 직접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면 재활용 불가입니다. 반투명·불투명 페트병 역시 재활용 불가. 샴푸나 로션통에 많이 달려 있는 펌프는 내부에 금속 스프링이 들어있고, 플라스틱 재활용 공정에서 파쇄기를 상하게 할 수 있어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합니다.

화장품 브랜드와 원료에 대한 설명이 빼곡히 적힌 제품. 정작 용기의 소재에 대한 표기나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유리 화장품병은 일반적인 병류와 달리 색깔별로 모아 부순 뒤 재활용하는 시스템입니다. 투명·갈색·녹색 유리병만 모아 재활용으로 분류하고, 나머지 유리병은 재활용 불가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조그만 화장품 샘플 용기는 아예 분리배출 표시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크기가 작다보니 폐플라스틱 선별작업장에서도 고스란히 버려집니다. 그리고 여러 플라스틱 소재가 섞여 재활용이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플라스틱 아더(OTHER)’가 압도적으로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과연 소비자들이 이 같은 분류법을 샅샅이 숙지해야 할까요. 제조사들이 재활용 쉬운 물건을 만들어 팔면 훨씬 빠르고 구조적인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환경부에서는 재활용이 어려운 용기에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문구를 표기하도록 했습니다. 2019년 말부터 적용된 ‘재활용 등급표시제’입니다. 제조사들은 당연히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꺼릴 것이고, 이를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재활용이 쉬운 단일 재질 용기를 채택할 것이란 계산에서 출발했습니다.



새로 적용된 소재별 '재활용 어려움' 표시.


문제는 화장품 제조사들에 대해 등급표시제 의무를 면제해준 것. 환경부는 처음에는 2020년 9월까지 ‘계도기간’이라는 명목으로 면제해 줬지만, 지난 2월 들어서는 소비자들이 쓰고 난 용기를 회수하면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환경 단체와 소비자들의 시위·온라인 서명이 이어지자, 환경부는 다시 화장품에도 등급표시제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자체 회수 시스템을 갖춘 업체’에만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면제해준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아직까지 자체 회수 시스템을 갖춘 곳이 없는 상황. 덕분에 지난 3월 말부터는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찍힌 화장품이 매장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월 서울 광화문 LG생활건강 사옥 앞에서 열린 환경 단체들의 집회 현장. /사진=녹색연합


화장품 업계에 대한 압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입니다. 펌프나 뚜껑류의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제조사들이 직접 빈 통을 회수에 재활용률을 높이도록 해야 하고, 애초에 빈 통을 걱정할 필요 없도록 리필 제품을 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일부 화장품 기업들은 ‘리필 스테이션’ 등을 통해 이러한 요구에 느리게나마 부응하는 모습입니다.

이날 5시간 가까이 수백 개의 화장품 통을 조사한 에디터는 귀가 후 처음으로 샴푸와 로션 통을 유심히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씻고 로션을 바르면서 몇 개의 제품을 썼는지 머릿속으로 세어봤습니다. 많이 쓰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도 기본적으로 6개나 됐어요. 스크럽이나 마스크팩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쓰는 제품까지 합치면 9개나 됐습니다.

에디터는 과거 유리나 금속 병에 리필용 샴푸와 바디워시를 담아 쓴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제대로 세척해 쓰지 않으면 ‘녹농균’이 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만뒀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리필용 샴푸·바디워시의 종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선택지가 좁다는 점도 빠른 포기에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화장품 용기 모니터링의 경험은 재도전의 의지를 불어넣기에 충분했습니다. 쟁여놓은 물건을 다 쓰고 나면 플라스틱 포장재가 없는 샴푸바·린스바(비누), 고체 치약부터 시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화장품이 있다면 가급적 재활용 가능한 용기에 담긴 제품을 택할 계획입니다. 또 최대한 잘 버리기 위해 ‘쓰레기백과사전’의 화장품 페이지(링크)를 즐겨찾기로 등록해뒀습니다. 미약한 노력이라도 계속되면 세상이 조금씩 바뀔 거란 믿음을 키워나가려고 합니다.

/팀지구용 use4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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