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 있고 치밀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5분이 짧은 것 같지만, 20분 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5분 이상 집중해서 보기가 쉽지 않잖아요.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들이 선호하는 시간도 5분이라고 하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에게 5분이라는 시간 동안 알차게 집중력을 안겨주면 호응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상 콘텐츠의 길이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청자들이 짧은 토막 시간에 스낵처럼 즐길 수 있는 영상을 선호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부터 투니버스·KBS에서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 ‘마카앤로니’는 이 같은 ‘숏폼' 취향에 충실히 따른다. 15분 안팎의 방송 시간은 5~7분 짜리 두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작품을 만드는 우경민 감독은 최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다 덜어내고 나니 남은 분량”이라며 “작품에 집중력이 생기면 캐릭터가 확산되기도 쉽고, 유튜브나 틱톡 등 숏폼 플랫폼에서도 더 잘 소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 감독은 모션그래픽 회사에서 광고·게임 영상을 만들던 2014년에 내놓은 데뷔작 ‘자니 익스프레스’로 처음 주목을 끌었다. 회사의 제안으로 유튜브에 올린 3D 단편 애니메이션은 이듬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최고 인기 영상’으로 선정됐고, 미국에서 장편 시나리오로 만들자는 제안까지 받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마카앤로니’는 우 감독이 독립해서 차린 제작사 브릭스튜디오를 통해 내놓은 첫 본격 상업 작품이다. 발명가 알버트 박사와 그의 조수인 고양이 ‘마카’와 펭귄 ‘로니’, 허드렛일을 돕는 로봇 ‘알바고’가 연구실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넌버벌(비언어적) 슬랩스틱 애니메이션이다. 그는 “원래 알버트를 주인공으로 하려다 반려동물의 지능을 높여 조수로 삼는다는 콘셉트가 재밌다고 생각했다”며 “캐릭터를 모아 놓으면 4인 가족 느낌”이라고 소개했다.
작품은 아직 준비된 분량의 3분의 1 정도밖에 방영되지 않았지만 우 감독은 이미 두 번째 시즌을 제작 중이다. 그는 “넌버벌이 문화와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비록 대사는 없지만 5분 남짓의 영상 속에는 기승전결 구도를 갖춘 치밀한 스토리가 촘촘히 담겨 있다. 우 감독은 어릴 적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매 순간 마다 녹아들어 있는 아이디어 때문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자신의 경험을 연출에 반영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스토리다.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구상-각색-스토리보드-작화 등 각 단계마다 숱한 회의를 거치고, 스토리와 작품을 다 만들어 놓고도 여러 차례 논의를 한다고 그는 전했다. 다른 슬랩스틱 코미디와의 차별화를 위한 고민도 많이 한다. 우 감독은 “반전이나 캐릭터의 감정 등을 담은 상황적 개그가 많다.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반전 전개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작품 중에는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을 법한, 짙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에피소드도 종종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우 감독은 “어린이들도 알 건 다 안다, 과소평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제작에는 CJ ENM(035760)이 창작 파트너십 ‘에이랩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았다. 통상 애니메이션 기획서를 제출하면 캐릭터와 연계한 완구 출시 계획부터 얘기하는 곳이 많은데, CJ ENM은 콘텐츠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재미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우 감독의 설명이다.
TV, 유튜브 다음으로 우 감독이 바라보는 방향은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쪽이다. ‘마카앤로니’도 글로벌 시청자를 겨냥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전 세계 시장과의 접점이 더욱 많은 OTT 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 스튜디오 규모에서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와 연출을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그는 “픽사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9편 연속 성공시킬 수 있던 것은 스토리 작업 시스템을 제대로 갖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스토리 중심으로 진정성 있게 성장해서 픽사만큼 재밌다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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