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운이 물씬 풍기던 29일. 서울 정의여자중학교 수학실에 모인 학생들의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였다. 평소 학교 수업 시간에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특별한 강의가 열렸기 때문이다. 도봉도서관이 정의여자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마련한 이날 강좌에서는 김은영 경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가 ‘쓸모 있는 서양미술사’를 주제로 열띤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김 교수는 “흔히 사람들은 유명한 미술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바람에 놓치는 부분이 많다”며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주의할 점을 짚어줬다. 김 교수는 오라스 베르네의 ‘바티칸 광장의 라파엘로(1833)’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작품의 중앙에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라파엘로가 그려져 있다. 베르네는 라파엘로 주변에 까치발을 하고 그의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라파엘로가 얼마나 주목받는 화가였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점은 신진 화가로 급부상한 라파엘로를 곁눈질 하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이다. 베르네는 이 작품을 통해 이들 세 거장이 서로 견제하며 공존하던 당시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그림은 멈춰있는 것 같지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한 편의 그림으로 몇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며 “당시 사람들에게 그림은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엔터테인먼트였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피에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 3대 거장의 대표 작품을 자세히 설명했다.
도봉도서관이 마련한 김 교수의 ‘쓸모 있는 서양미술사’ 강의는 ‘고인돌 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 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 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김 교수의 이 날 강의는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을 시작으로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대표 작품들의 특징을 개괄하며 마무리 됐다.
강의에 참석한 정의여중 1학년 배규나 양은 “미술에 관심은 있었으나 자세히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며 “강의를 듣고 미술 작품 속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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