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家)가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상속 재산의 절반을 웃도는 12조여 원을 상속세로 납부한다. 이는 2017년 이후 3년치 국내 상속세 총액 10조 6,000억 원을 웃도는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하나로 꼽히는 상속세”라고 평가했다. 유족들은 상속세 납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 보유 주식마저 담보로 맡겨 수천억 원대의 신용 대출을 받을 처지에 몰렸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50%이지만 최대 주주가 지분을 상속하면 할증돼 최고 60%까지 치솟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6%)의 두 배를 웃돌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과 영국의 상속세율은 40%에 머무르고 있고 장수 기업이 수두룩한 독일은 30% 수준이다. 가혹한 상속세를 견디지 못해 가업 승계 대신 해외 매각을 택하는 중소기업이 속출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밀폐 용기 업체인 락앤락이나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였던 쓰리쎄븐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결국 회사를 매각한 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상속세 부담이 비단 삼성 같은 일부 대기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는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의 핵심인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을 지켜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과도한 세금 부담을 없애고 파격적인 규제·노동 개혁을 단행해 안정적 경영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 지나친 상속세 족쇄는 기업인의 경영 의지를 꺾고 투자를 가로막아 국부 유출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뿐이다. 이제는 최대 주주 주식 할증률 완화 등으로 상속세 부담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상속세 물납제를 폭넓게 허용하고 분납 기간을 늘려 모래주머니 같은 기업 부담을 낮춰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고용을 보장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상속세 감면·유예 제도 도입도 추진해야 한다. 부의 대물림으로만 보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 일자리 지키기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징벌적 상속세를 손질해야 한다.
/논설위원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