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플랫폼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논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개별 기업의 노동자 집단이 자신들을 개인사업자가 아닌 고용된 직원으로 인정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기업들은 개별적으로 대응했다. 반면 이제는 정부가 업종에 상관없이 모든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 지위를 안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플랫폼 노동자가 대폭 증가하면서 이들의 불안정한 고용 지위가 부각돼 근로자로 인정하는 국가도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두고 타협할 기회라도 달라며 반발하고 있다.
세계 노동절을 이틀 앞둔 29일(현지 시간) 마티 월시 미 노동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경우에서 긱 노동자는 (회사에 직접 고용된) 직원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밝혔다. 긱 노동자는 기업에 고용되지 않고 플랫폼을 통해 그때그때 제공되는 일자리를 잡는 사람이다. 이들은 플랫폼 기업의 지침에 따라 일해 사실상 회사에 고용된 직원 같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개인사업자로 분류됐다. 즉 법정 최저 시급과 유급휴가 등 각종 혜택을 노동법에 따라 보장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주목할 점은 월시 장관이 ‘일관성’을 강조한 것이다. 월시 장관은 “긱 노동자가 어떤 경우에는 독립적인 대우를 받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며 “전체적으로 일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월시 장관의 이번 발언은 미국 정부가 개별 기업과 노동자 간의 고용 조건에 대한 소송을 지켜만 보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모든 플랫폼 노동자가 직원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친화적인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코로나19 대유행이 맞물려 이런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식료품 배달 라이더 수요가 늘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진입 장벽이 낮은 플랫폼 노동에 뛰어들며 긱 노동자가 많이 늘어났다. 갤럽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노동자 3명 중 1명이 전업 혹은 부업으로 긱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관련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 지난 2월 바이든 행정부는 뒤늦게서야 정부가 직원들의 급여를 지원하는 중소기업급여보호프로그램(PPP) 신청 자격을 변경해 우버 기사 등 개인사업자도 혜택을 받도록 했다.
개별 기업이 노동자의 처우를 달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2019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AB5법’을 통과시켜 우버와 리프트 등에서 일하는 운전기사를 노동자로 분류하도록 했다. 하지만 우버와 리프트는 비용 부담을 우려로 반발했고 운전·배달 기사를 개인사업자로 간주하는 주민발의안을 내놓았다. 이들 업체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발의안을 홍보했고 지난해 11월 발의안이 통과돼 우버·리프트 운전기사들은 계속 개인사업자로 분류됐다. 이들 업체가 운전기사에게 최저임금의 120%를 보장하고 초과 노동을 제한하는 등 추가 조치를 내놓았지만 노동법에 따른 권리가 모두 보장될 기회는 사라진 것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스페인은 3월 유럽연합(EU) 최초로 모든 긱 노동자를 직원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욜란다 디아스 스페인 노동장관은 당시 “배달 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는 마땅히 권리가 인정되는 ‘피고용 근로자’이며 현재 보장되지 못하는 사회적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경쟁 및 기술 담당 위원은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지속 가능하고 공정하게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며 “집행위 차원에서 긱 노동자의 법적 지위에 대한 검토에 나섰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는 연말까지 긱 노동자의 법적 지위에 대한 법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은 최소한 ‘선택권’이라도 달라는 입장이다. 부업으로 플랫폼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각종 규정이 적용되는 직원 처우를 받기보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니클라스 외스트베리 딜리버리히어로 CEO도 현재의 논의에는 “직원들의 관점이 누락돼 있다"고 밝혔다.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도 긱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분류하되 최저임금, 근무시간 제한 등에 대해 타협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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