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여행 계획을 짤 때 숙소 선정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클래식하든 미니멀하든 각자 취향에 맞는 공간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묵는 경험도 중요하니까요. 무엇보다도 희고 깨끗하고 ‘빨래 걱정 없는(중요)’ 침구가 우리를 맞아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호텔 침구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 분?
김민희 레미투미 대표는 우연한 기회로 그들의 짧은 수명(1~2년)을 알게 됐습니다. 주얼리 디자이너였던 시절(군인에 우주인선발시험까지, 김 대표의 변화무쌍한 경력이 궁금하신 분들은 클릭), 버려지는 호텔 침구가 너무 말짱해서 "이걸로 뭔가 만들 수 있겠다"고 떠올린 거죠. 실제로 조금 얻어와서 원래는 사람용 제품을 만들어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미 여러 번 쓰인 제품이다보니 소비자들이 긍정적인 인식을 갖기 어려워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때, 반려견인 토리, 반려묘인 나리가 그 원단 위에서 부비고 뒹굴대며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반려동물 쪽으로 시장을 틀면 고객들(=동물)의 호응도, 반려인들의 인식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새것 같아도 버려지는 침구를 ‘구조’하다
생산 과정은 이렇습니다. "메종글래드·롯데시티·라마다 호텔서 아깝게 버려지는 침구를 정기적으로 받아와요. 받아온 시트는 세탁 전문업체에서 세탁을 한 다음 작업실에서 재단을 해요. 그리고 서울 공장으로 보내서 완성품을 만들어요."
재료 수급(?)에는 문제가 없는지 궁금했는데, "워낙 버려지는 침구들이 많아서 남아돌 정도"라고. 제주도의 레미투미 작업실에는 호텔 침구가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 한 달에 받아오는 물량만 그 정도였던 겁니다. 레미투미에 원단을 공급해주는 호텔들은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아주 살짝 손상된 시트나 이불 커버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새것만 같은 침구들이 전국적으로는 얼마나 많이 버려지고 있을지, 잠시 아찔해졌습니다.
호텔 입장에서도 원래대로라면 정기적으로 비용을 내고 그 많은 침구들을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레미투미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레미투미는 비용을 들일 필요 없이 안정적으로 재료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대표 상품이 다양한 크기의 댕냥이용 방석과 담요입니다. 업사이클링 제품들이라 의미가 깊은데, 더 좋은 건 "5성급 호텔에서 쓰던 60수 고밀도 원단이라 털이 잘 안 붙고 잘 떨어진다"는 말씀이었죠. 고양이 집사인 지구용 에디터는 지난 8년 동안 이불과 옷과 수건과…아무튼 모든 패브릭류에서 반려묘 털을 떼내는 데 오조오억 시간을 할애해 왔기 때문에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을 확인하러 제주도의 레미투미의 작업실까지 날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침 반려묘 나리(나 사장)가 계속 레미투미 담요에 폭 싸인 채로 김 대표님께 안겨있었습니다. 에디터가 매의 눈으로 살펴봤는데 담요가 정말 깨끗했습니다. 물론 나 사장의 털이 좀 붙어있긴 했지만 김 대표가 쓱쓱 털어내니까 떨어져나갔습니다.
다른 제품들도 본연의 기능뿐만 아니라 지구를 보호한다는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제주에서 공수한 메밀로 속을 채운 방석 역시 호텔 침구로 만들었고, 충북 지역의 로컬 크리에이터인 '천연염색 바른'과 손잡고 푸른빛 쪽으로 색을 입혔어요. 호텔에서 버려지는 타월을 공수해다가 만든 뼈다귀 모양 노즈워크 장난감도 굿아이디어. 세 군데에 간식을 끼울 수 있고 세탁도 쉬우니까 댕댕이 입장에서도 반가울 것 같았어요. 매트리스 토퍼를 만들 때 버려지는 자투리 메모리폼으로 만든 방석, 자투리 천으로 만든 손수건도 눈에 띄었습니다.
레미투미가 고용한 모델(?)들은 당연히 모두 동물들입니다. 김 대표는 “지인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델들을 섭외하고, 촬영할 때 쓴 제품과 간식·장난감 박스를 모델료로 지급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나리, 토리가 가장 많이 등장하긴 합니다. 3kg대의 작은 고양이인 나리는 워낙 사람을 겁내지 않고 다른 동물들과도 크게 갈등이 없는데, 토리는 어렸을 적 경험 때문인지 다른 댕댕이들과 함께 있는 걸 힘들어한다고. 그래서 아예 다른 공간에서 촬영하는 등 세심한 케어가 이뤄집니다.
100% 친환경의 길은 멀어도…최대한의 노력을
레미투미에서는 택배 박스도 테이프가 필요 없는 '날개박스'를 씁니다. “종이테이프도 써 봤지만 근본적으로 재활용이 안 되는 데다 접착력이 강해서 분리배출이 어려워서”입니다. 그래서 좀 더 비싸더라도 날개박스를 택했다네요. 담요나 방석은 따로 완충재가 필요 없어서 아예 쓰지 않고, "정 필요하면 레미투미가 갖고 있는 원단으로 돌돌 감싸서 보낸다"고. 그리고 비닐 포장재도 종종 쓰는데, 분리배출만 잘 하면 어중간한 포장재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분리배출을 잘 해달라는 당부가 적힌 스티커(아주 쉽게 떼어지는 쿨한 녀석)를 붙여서 보낸다고 합니다.
레미투미는 앞으로도 계획이 많습니다. "호텔 침구를 갈아서(!) 펠트로 가공해 봤어요. 고양이들이 놀이 매트로 좋아하더라구요. 펠트 캣터널도 제작해보고 있구요. 페트(PET)를 재활용한 원단은 방수 기능이 있어서 이동장이나 물고 빠는 장난감류를 개발해 볼 계획이에요. 대나무 섬유·한지 섬유도 염두에 두고 있구요." 김 대표의 설명입니다.
지구용사님들도 짐작하시겠지만, 한계가 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레미투미 일부 제품에 들어가는 마이크로화이바 충전솜·듀스포 방수원단은 화학섬유라 잘 썩지 않습니다. 레미투미의 판매 품목 중 타 기업 제품인 생분해 풉백(반려견 산책 중 생성된 똥을 담는 비닐)도 일반적인 자연 환경에선 썩기 어렵습니다.
김 대표는 "최대한 친환경 요소를 많이 담지만 '100% 친환경'으로 설정하진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하면서 회사가 이윤을 내고, 결과적으로 사회와 함께 발전한다는 사명감"이 있지만 100% 친환경은 기술적으로, 또 가격 측면에서도 어려우니까요. 사업의 지속 가능성도 고려하면 결국 일정 부분 타협은 하되, 꾸준히 대안을 고민하고 도전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 대표는 "소비자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ex.털이 잘 떨어짐, 동물님들이 좋아하는 소재)이 충족된 상태에서 누구나 인식하는 문제(=환경)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사업 철학을 밝혔습니다. 지구를 지키는 노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선을 점점 높여나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인터뷰에서 김 대표님의 가장 인상적인 한 마디. "쓰다가 버려져서 생명을 다 한 물건이 다시 희한한 무언가로 재탄생하고, 그게 오롯이 사람의 창의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경이로웠어요." 그런 재발견이 조금씩 세상을 바꿀 것이란 희망이 전해졌습니다.
/팀지구용 use4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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