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며 보름 넘게 일본대사관 앞에서 무기한 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불법 집회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이 광화문 집회 등 다른 집회를 원천 차단했듯 대사관 앞 불법 농성에도 강력 대응해 건전한 시위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3일 경찰에 따르면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 등이 참여한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저지 대학생 긴급 농성단(농성단)’은 지난달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단은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습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단이 대사관 앞에서 진행하는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집회다. 서울시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지난해 2월부터 광화문광장·서울광장 등에서 도심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외교기관 100m 이내는 집회 금지 구역으로 정해져 있다.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수요집회가 대사관 바로 앞이 아니라 인근 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까지 농성단은 두 차례 집회 신고를 서울 종로경찰서에 접수했으나 경찰은 집회 금지 구역이라는 이유로 모두 금지 통고를 내렸다.
경찰의 금지 통고와 해산 명령에도 농성이 이어지자 경찰은 추가 인원 진입을 막고 각종 물품을 차단했다. 물리적인 충돌을 최소화해 자진 해산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이 불법 농성장을 방문한 이후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달 17일부터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진성준 의원과 윤미향 의원실 보좌관 등 여당 관계자들이 농성 현장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의원들은 방한용품 등을 농성장 안으로 들여놔 달라고 경찰에 요구하며 농성 학생들을 지지했다.
대사관 앞 농성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농성단 관계자는 “농성 기한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오염수 방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진행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은 강제 해산 등 조치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매일 100여 명이 넘는 경찰력을 투입해 대사관 앞 농성을 관리하고 있다. 농성장 인근에 차 벽을 둘러 세우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집회 자체를 해산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외교 공관 집회는 업무 수행에 방해가 발생하는지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며 “현재 일본대사관 앞 농성은 그런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의 소극적인 대처는 다른 집회를 원천 차단한 전례를 봤을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 강제 해산에 들어갈 근거가 충분한데도 불법 집회를 방치하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등 건전한 시위 문화를 정착시킬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광화문 집회는 완전 봉쇄했으면서 지금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며 “특히 외교 이슈 관련 불법 집회에 엄정 대응하지 않으면 법치국가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는 만큼 강제 해산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