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힌 지난 1년여 동안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닌 여행객들이 국내 여행을 두고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세대를 불문하고 사람이 몰리고 인기가 있는 여행지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강릉이다. ‘드라이브 스루’ ‘차박’에 이어 ‘서핑 천국’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강릉은 50~60대에게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추억이 깃든 곳으로, 20~30대에게는 커피로 기억되는 도시다. 세대를 초월해 여행객들을 끌어들이는 강릉 여행의 키워드는 ‘커피’와 ‘파도 소리’ ‘인생사진 명소’를 따라가는 감성 여행이다. 푸른 바다와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그 옆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 도로까지 절경이 펼쳐지는 7번 국도를 타고 강릉에 다녀왔다.
출발은 동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헌화로다. ‘절벽 끝 바다 위를 달리는 길’이라 불리는 7번 국도, 그중에서도 헌화로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해안 도로다. 금진해변에서 정동진항까지 이어진 2.4㎞ 구간 내내 차창 밖으로 기암괴석과 동해의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헌화로’라는 이름은 이곳에 얽힌 ‘헌화가’에 빗대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시대 이곳을 지나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에게 한 노인이 철쭉을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다.
헌화로의 백미는 금진해변에서 심곡항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옥계IC로 빠져나오면 곧바로 금진해변으로 접어든다. 해안선을 따라 한참을 돌아가는 길이지만 답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벌써부터 서퍼들로 북적대는 은모래 백사장의 금진해변도 눈요깃거리다.
차에서 내려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고 싶다면 심곡항이 제격이다. 심곡항에서 정동진까지 총 2.86㎞(2시간)짜리 국내 최장 해안 단구 탐방로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이 펼쳐진다. 2,300만 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파도에 깎인 바위가 조각 작품처럼 펼쳐지고 해국과 땅채송화·기린초·돌가시나무 같은 다양한 식물도 만나볼 수 있다.
부채바위길은 운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다. 강풍과 호우·풍랑주의보가 내려지면 출입이 통제되고, 입장 시간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제한되는데 그나마 상황이 좋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개방 시간이 지났다면 심곡항에서 부채바위길을 보는 것도 방법이다. 멀리 정동진의 명물 ‘썬크루즈’까지 조망할 수 있는 데다 낚시꾼들 빼고는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어 한적하게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정동진을 넘어 다시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동명해변쯤에 하슬라아트월드가 자리 잡고 있다. 강릉 내에서도 요즘 가장 ‘핫’하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성지 중 하나다. 괘방산과 동해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에 야외조각공원·미술관·카페·레스토랑·뮤지엄호텔을 조성했다. 야외조각공원은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탈면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총 33만㎡의 부지는 수백 점의 예술 작품들로 채워졌다. 풀숲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기린과 하늘 위를 나는 듯한 자전거, 뿌리째 뽑힌 나무 등은 작품성을 떠나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슬라아트월드의 인기 비결은 사진이다. 특히 현대미술관 내 설치 작품인 ‘터널’과 피노키오전시관 밖 포토존이 사진 명당으로 꼽힌다. 관람객 동선이 겹칠 일이 없을 정도로 넓은 규모지만 이곳에만 가면 사진을 찍으려고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전시 작품과 주변을 둘러싼 식물들로 매번 달라진 풍경을 만나볼 수 있는 하슬라아트월드는 실내 전시 공간부터 야외조각공원 산책로까지 다 둘러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하슬라아트월드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커피 성지’라 불리는 안목해변이다. 1990년대 커피 자동판매기로 유명했던 곳이 커피 전문점이 즐비한 국내 대표 커피거리로 발전했다. 한동안 강릉 커피에 대한 열기가 식으면서 찾는 이들이 줄었다가 코로나19 이후 다시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지난 3월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0년 MZ세대(20~30대)가 많이 찾은 관광지 중 한 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안목해변에서는 커피 맛보다는 뷰 맛집을 고르는 게 우선이다. 해변 앞으로 줄지어 선 커피 전문점 가운데 바다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들어가면 통유리창 넘어 펼쳐지는 푸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사람들로 밀집된 실내가 불안하다면 커피를 들고 해변이나 솔숲을 걸어도 좋다.
안목해변이 자판기 커피로 시작한 곳이라면 명주동은 드립 커피로 시작된 명품 커피거리다. 강릉의 구도심 명주동은 고려시대부터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였는데 명주예술마당·강릉커피축제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이 열리면서 ‘명리단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래된 골목길에는 적산가옥을 개조한 카페부터 낡은 방앗간을 카페로 바꾼 곳까지 아기자기한 감성의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이색 카페·문화 공간뿐만 아니라 강릉의 역사도 느낄 수 있다.
강릉 도심 여행도 드라이브 스루로 가능하다. 강릉시는 이달부터 공공 전기자전거를 운영한다. 모바일 앱에서 휙파인패스를 내려받으면 명주동과 안목해변·강릉역·경포해수욕장 등에서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를 대여할 수 있다. 타고 온 차량을 세워 두고 자전거로 구도심과 해변을 오가며 바닷바람을 쐬어보는 것도 강릉을 제대로 즐기는 코로나 시대 여행법이다.
/글·사진(강릉)=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