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기운이 완연했던 6일 오후. 백지희 화가 겸 인하대 조형예술학과 강사의 ‘손으로 생각하기’ 첫 강의가 열린 서울 영등포고등학교 미술실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1~3학년 학생 20여명이 모인 미술실로 들어선 백 강사는 “미술로 놀아보자”며 두 명씩 서로 등을 대고 앉게 했다. 그는 등을 맞댄 두 명 중 한 사람에게만 안대를 씌운 뒤 와인오프너, 조리도구 등 준비한 물건을 나눠줬다. 안대를 쓴 사람이 촉각에만 의지해 물건을 설명하면 상대방은 들은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 하는 것이다. 잠시 후 백 강사는 안대를 벗고 등을 돌려 서로의 물건과 그림을 비교하게 했다. 물건과 그림을 확인한 학생들은 “이거였어? 전혀 비슷하지 않게 그렸어”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백 강사는 “촉각으로만 사물을 인지하고 그린 그림이 제한된 정보 때문에 불완전 할 수밖에 없듯이 눈으로만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도 오류가 발생 한다”며 착시효과를 이용한 설치미술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백 강사는 이어 학생들에게 종이 전체를 목탄으로 검게 칠하게 한 후 지우개를 이용해 자화상을 그리도록 했다. 학생들은 지우개로 검은 목탄 부분을 지우며 자신의 얼굴 윤곽을 만들어갔다.
자화상 그리기를 마친 후 백 강사는 “지우개는 지우는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지우개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며 “문제의 답은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며 발상의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동작도서관이 마련한 백 강사의 ‘손으로 생각하기’ 강의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백 강사의 ‘손으로 생각하기’ 강좌는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주제로 영등포고에서 5월 말까지 두 차례 더 이어질 예정이다.
수업에 참여한 영등포고 3학년 오세효 군은 “그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수업이었다”며 “표현 방식과 범위를 넓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공지연 영등포고 미술 교사는 “학생들이 미술을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며 “앞으로 다양한 예술관련 인문학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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