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혹시 요새 핫하다는 ‘파테크’ 해보셨나요? 흙에 꽂아두고 물만 주면 정말 쑥쑥 자란다는데, 에디터는 어쩐지 엄두가 나질 않아 아직 도전하지 못했어요. 반려식물을 7년째 키우고 있는 식물 집사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농작물을 기른다는 건 ‘어나더 레벨’로만 느껴지더라고요. 먹거리를 집에서 기르려면 최소한 한 뼘이라도 마당이나 옥상 정돈 있어야 하지 않나요? 마당은 언감생심, 현실은 베란다 없는 원룸이나 창문이 있어도 열 수 없는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이 수두룩 하잖아요. 그런데 얼마전 이런 저의 선입견을 와르르 무너뜨린 잡지를 발견했어요. 바로 <계간 씨발아>에요. (오타 아니에요. 욕한거 아니에요) 도심 속 원룸이나 반지하에서도 충분히 씨앗을 발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잡지와 함께 씨앗을 보내 주는 신박한 사람들을 지구용레터가 만나고 왔습니다.
마당 없는 사람들을 위한 농사 지침서 <계간 씨발아>
<계간 씨발아>는 도심 속 어디에서도 씨앗을 발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시인을 위한 농사 지침서에요. 도심 속이라도 마당있는 주택이나 널찍한 옥상이 있는 곳이 아닌, 정말 원룸이나 빌라 등 실내에서 싹을 틔우는 방법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게 핵심 포인트죠. 이 잡지를 기획한 최지윤 편집장님은 5년 전부터 도시 농부로 살고있다는데요. 초록이를 워낙 사랑해서 처음에는 관상용 화분을 기르기 시작하다가 나중엔 과일을 먹고 남은 씨앗을 심어보기 시작했대요. 그런데 의도치 않게(?) 싹이 나버린거에요. 그것도 창문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는 오피스텔에서요. “동그랗고 까맣고 쪼그만한 씨앗에서 알록달록한 식물이 나온다는게 너무 신비롭고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렇게 발아에 심취하게 됐죠.” 하지만 막상 실내에서 발아를 시키려다보니 난관이 많았어요. 도시, 실내 농부를 위한 참고 자료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방에서 소량으로 작물을 키우는 방법은 아무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비료는 비율을 잘 맞춰 뿌려줘야 하는데, 화분에 줄때에는 어떻게 비율을 맞춰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재료도 마찬가지죠. 단적으로 다이소에서 씨앗을 한 봉지 사도 집에서 키우기에는 너무 많잖아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비디오트럭’의 정광석 대표와 의기투합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를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탄생한게 <계간 씨발아>에요.” 지난달 창간호를 발간한 <계간 씨발아>는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목표 금액의 283%를 달성했어요. 에디터도 홀린듯 펀딩에 참여(내돈내산)했어요. 옵션을 선택하면 편집자들이 직접 선정한 씨앗 2종(해바라기, 스위트 바질)과 친환경 발아 키트를 받아볼 수 있어요. 따로 흙이나 화분을 구할 필요 없이, 발아를 경험할 수 있는 올인원 키트에요. 앞으로도 계절에 맞는 씨앗을 큐레이션해 옵션을 선택한 구독자들에게 발송해줄 예정.
방구석 농장에서 인삼까지 길러본 썰 풉니다.
화분에, 그것도 실내에서 뭘 얼마나 키울 수 있냐고요? 최 편집장님은 집에서 인삼을 기르고 있대요. 이 외에도 딸기와 케일, 선인장 등 30종의 식물을 기르고 있고요, 조만간 지인에게 얻은 마(네 마즙을 만들 때 쓰는 그 마)를 심을 계획이라네요. 잡지에 게재하기 위해 다양한 도시 농부들을 만나보신 최 편집장님에 따르면 방 안에서 연꽃을 기르는 분도 있었다는 군요. “연꽃은 연못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체 어떻게 연꽃을 키우시는 거에요?” 에디터가 물었더니 빨간 고무 대야에 키우고 계시대요. 그분을 만나고 나서 또 한번 실내 경작에 불가능은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최 편집장님. 하지만 그건 선택받은 일부 금손들만 가능한거잖아요! 전 식물 똥손이라고요! 에디터의 반발에 편집장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여러분은 똥손이 아니에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눈물이 날 것 같은 편집장님의 위로였어요.
“저는 사람들이 식물 저승사자다, 똥손이다. 하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아무도 안알려줘서 그런건데 본인 탓을 하시니까…누군가 살짝만 알려주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라도 어디에서든 싹을 틔울 수 있어요. 반지하에서도 말이에요. 실제로 서울시에서는 버려진 반지하 공간을 버섯 농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내 방 안에 한 뼘만한 햇빛만 들어온다면, 창문이 하나라도 있다면 식물을 키울 수 있어요. 물론 그 환경에 잘 맞는 식물을 고르는게 중요하죠. 집이 어두운데 햇빛이 많이 필요한 활엽수를 들여 놓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어요. 또 식물을 기를 때 간과하는게 통풍이에요. 햇빛과 물의 중요성은 아는데 통풍은 잘 신경을 안쓰더라고요. 식물은 무조건 창문 옆에 두세요. 문을 닫아두더라도 창문 옆이라면 미세하게나마 공기가 통하거든요. 물론 빛도 잘 들고요. 실내에서 식물을 기르는 장점도 있어요. 따뜻하잖아요. 가을이나 겨울에도 씨앗을 뿌릴 수 있죠."
부러진 선인장이 알려줬어요. 아무리 작은 생명도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단걸.
수많은 식물을 키우고 발아시켜 본 편집장님에게 가장 특별한 식물은 어떤 친구였을까. 편집장님은 망설임없이 선인장을 골랐어요. “수년째 키우고 있는 선인장이 있어요. 꽃시장에서 5,000원인가 8,000원인가 주고 산건데. 고양이가 뛰어다니다 선인장을 건드려서 똑하고 부러진거에요. 어떡해야하나 망연자실해 있다가 혹시나 하고 테이프를 붙여놨어요. 그냥 문구용 투명 테이프요. 그렇게 3~4개월이 지나고 테이프를 뗐는데 선인장이 다시 붙은거에요. 전 그 모습을 보고 소름이 끼치고 조금 무섭기까지 했어요. 아, 이게 정말 살아있는 존재구나, 너무도 실감이 돼서요. 그 후론 길가에 핀 풀 한 포기도 하찮게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강원도 어디 산을 밀어서 타운하우스를 만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거 아닌가? 집을 지으면 좋은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이 달라졌죠. 우리가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없어요.” 최 편집장님은 집에서 화분 하나를 기르는게 지구를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친환경에 필수적인게 바로 지속적인 관심이잖아요. 식물과 함께 생활하면 자연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특히 파종을 경험해보면 농업이나 먹거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죠. 먹거리가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올라오고,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면 절대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하찮게 대할 수 없아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은 절대 밖에서 풀밭에라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요. 그렇게 방에서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또 연결될 때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계간 씨발아> 최지윤 편집장의 막간 식물 고민상담
Q. 우리집엔 햇빛과 바람이 모자라요.
A. 한뼘의 빛만 있어도 식물을 기를 수 있어요. 포기하지 말고, 다육이나 틸란드시아 등 생명력이 강한 식물을 키워보세요.
Q. 물주기가 너무너무 어려워요.
A. 아묻따 수경재배 식물을 고르세요. 미니 아레카야자, 홍콩야자, 스킨답서스, 무늬 아이비 등을 추천합니다.
Q. 초보자인데 조금 큰 화분도 키울 수 있을까요?
A. 오히려 초심자에게는 조금 큰 화분을 추천해요. 생명력이 강하거든요. 특히 고무나무, 알로카시아는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줘도 잘 자라요.
Q. 이파리가 노래졌는데 어떻게 하면 좋죠? 울애기 이대로 죽는건가요?
A. 당황하지 말고 마르거나 노랗게 된 부분은 가위로 잘라주세요. 그래야 양분이 쓸데 없는 곳으로 가지 않고 살아있는 부분에 집중돼 더 잘 자라거든요.
Q. 파테크 중인데 하도 잘라 먹었더니 파 맛이 안나요. 이제 더 기를 수 없나요?
A. 그대로 계속 기르면 파꽃이 필거에요. 꽃이 지고 꽃송이를 말려 털면 씨앗을 얻을 수 있어요. 파테크에서 한발 나아가 파싹을 틔워보세요. 화이팅!
/팀지구용 use4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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