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신 뒤 잠이 들었다가 실종된 후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2)씨 사건 관련, 정민씨와 한강에서 함께 술을 마신 친구 A씨 측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유족과 진실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정민씨 아버지 손현(50)씨가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의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
손씨는 16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비오는 일요일'이란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오늘 집회가 있었다고 들었다"며 "어릴 때부터 배운 사회 교과서에 우리나라는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손씨는 "저와 정민이의 의사와 관계없이 누구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그걸 이용하려는 분들도 있고 각자의 생각이 틀리다 보니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그걸 해결해 나가는 게 우리 사회라고 생각한다"고도 적었다.
아울러 손씨는 "많은 유투버분들이 있고 후원 관련 문제가 있다고도 들었다"면서 "우리는 그 어떤 후원도 원치 않고 앞으로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각자 판단하실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여기에 덧붙여 손씨는 "저는 많은 분들의 관심 하나면 충분하다. 많은 분들이 힘센 변호사를 동원해서 압박해야 한다고 하신다"고 전한 뒤 "경찰이 내사 중인 사건이고 기소가 가능하다면 검찰로 넘어가는 것으로 안다. 민사도 아닌데 왜 그 과정에서 힘센 변호사가 필요할까. 제 판단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전 2021년의 우리나라를 믿고 싶다. 누구나 공정하게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손씨는 "만약 많은 분들이 우려하시는 대로 누군가 압력을 부당하게 행사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면서 "당신은 천년만년 살 것 같으냐고. 그렇게 지키려는 것들도 언젠간 다 부질없다고. 저보다 나이도 많을 것 같은데 말이다"라고 썼다.
한편 정민씨 실종 당일 함께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신 친구 A씨 측은 "유족과 진실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A씨의 법률대리인은 "지금은 고인을 추모할 때라고 판단해 그동안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면서 "사건 초기부터 여러 언론이 접촉해 왔지만 거절하고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이 매체에 전했다.
그러면서 A씨 측은 자신과 가족에 대해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 "억측과 오해들은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정민씨를 추모하는 시민들은 이날 정민씨가 실종된 한강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집회 시작 시간인 오후 2시께 모인 인원은 200명가량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뒤늦게 참가하는 인원이 더해져 300∼40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정민이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라', '신속·공정·정확 수사 촉구'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곳곳에서 "A씨를 수사하라", "CCTV 공개하라" 등의 구호도 나왔다.
이들은 오후 5시쯤 1차 해산요청 방송이 나온 후 자진 해산했다. 경찰과 서초구는 채증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집시법·감염병예방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지난 13일 정민씨의 사인은 익사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감정서를 회신 받았다고 밝혔다. 정민씨 머리 부분에서 발견된 2개 상처는 사인으로 고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국과수는 판단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6개 그룹, 목격자 9명을 조사한 결과 새벽 2시부터 3시 38분까지 정민씨와 A씨가 한강공원 인근에 돗자리를 깔고 같이 누워 자거나 구토를 했다는 공통된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정민씨는 누워있거나 앉아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경찰은 정민씨가 실종된 지난달 25일 새벽 4시 20분쯤 A씨가 가방을 멘 채 혼자 한강에 인접한 경사면 인근에 누워 잠들어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목격자는 "A씨가 물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한 위치라 보고 깨웠으며 당시 손씨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오전 3시 38분부터 4시 20분께까지 정민씨와 A씨의 공통된 행적이 없고 친구만 자고 있는 상태로 발견돼, 3시 38분 이후 두 사람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방침이다.
경찰은 국과수의 부검 감정서와 함께 정민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를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실종 당일 정민씨와 A씨는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 360㎖ 2병, 소주 640㎖ 2병, 청하 2병, 막걸리 3병 등 총 9병을 구매했다.
다만 경찰은 구매한 술을 이들이 다 마셨다고 단정할 수 없고, 누가 더 술을 많이 마셨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은 당일 이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데 의미가 있는 제보 몇 가지를 확보해 정밀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출입차량 154대를 특정해 동일 시간 출입자들을 상대로 탐문수사와 블랙박스 분석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A씨와 그 가족에 대한 경찰의 수사도 계속될 전망이다. 경찰은 A씨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은 데 이어 A씨의 노트북과 이들이 당일 현장에 타고 온 차량 블랙박스에 대한 포렌식 분석을 마쳤다. 아울러 아버지 휴대전화를 제출 받아 추가 포렌식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앙대 의대에 재학 중이던 정민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11시께부터 이튿날 새벽 2시께까지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친구 A씨와 술을 마신 뒤 잠이 들었다가 실종된 뒤 닷새 만인 지난달 30일 한강 수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경훈 기자 styxx@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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