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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흙을 뚫고 나온 기분…힘껏 날아올라야죠”

[인터뷰]뮤지컬 ‘나빌레라’ 채록役 강인수

발레10년→가수·배우10년 치열했던 시간

“채록처럼 현실·꿈 사이에서 고민 많았죠”

국내 뮤지컬 첫 도전서 주연 "더 배울 것"





무대 위 거대한 벽들이 청년을 조여온다. 그 위에 올라탄 이들은 말한다. “등록금은 내일까지 내야 해요” “대출은 더는 안 되겠네요” “콩쿠르 우승 못 하면 바로 군대 가야 해.” 저 멀리 꿈과 이상을 보기엔 현실의 벽은 높고 또 단단하기만 하다. 생계와 진로의 고민 앞에 주저앉은 청년은 세상을 향한 원망과 분노를 몸으로 토해낸다. 격정의 몸부림은 그러나 포기 아닌 ‘나는 꿈 꾸고 싶다’는 절규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벽을 마주하고, 그럼에도 그 너머의 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이기에 청년의 간절한 몸짓에 누선(淚線)이 요동친다. 팔순을 앞두고 발레에 도전한 노인 덕출과 방황하는 23세 발레 유망주 채록의 성장담을 그린 서울예술단의 가무극 ‘나빌레라’는 한층 강화한 안무와 연출로 무대 공연만의 매력과 감동을 빚어낸다. 그리고 그 감동의 가운데 주인공 채록 역을 맡은 배우 강인수(사진)가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가수·배우로 활동해 온 그는 발레 유망주 채록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국내 뮤지컬 데뷔작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채록으로 설 무대가 또 한 회차 줄었구나 싶어 아쉽네요.” 지난 16일 예술의전당. 이제 막 두 번째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강인수는 “또 한 회차를 마무리했다는 후련함과 동시에 아쉬움도 밀려온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그룹 ‘마이네임’으로 가수 활동을 하면서 일본 뮤지컬 무대에 선 적은 있지만, 국내 뮤지컬은 나빌레라가 처음이다. 뮤지컬 데뷔작에서 주인공까지 맡았으니 그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나빌레라는 강인수에게 인연이 남다른 작품이다. “2019년 초연 때 출연 논의가 오갔는데, 당시 제가 군 복무 중이었죠. 그때 공연을 보면서 ‘아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었어요.” 초연 관람 당시의 잊지 못할 일화도 있다. “옆에 앉았던 관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에 꼭 저 무대에 서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분도 ‘꼭 네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고요.” 따뜻한 응원을 건넨 이웃 관객은 바로 배우 안성기였다.





많이 닮은 강인수와 채록이다. 강인수는 예고와 대학교에서 10년 간 발레를 했다. 일상이 춤이었던 그는 그러나 어릴 적부터 품어온 ‘가수’라는 꿈을 위해 한 방송사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2011년 그룹 마이네임으로 데뷔했다. 멋지고 화려하게 날아오르길 기대했지만, 가수 활동은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데뷔 4~5년 차 땐 고민도 많았고, 채록이처럼 부정적인 생각만 했어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정말 서러웠죠.” 뭐든 해내야 한다는 욕심을 내려 놓으니 비로소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는 “채록이에게 덕출 할아버지가 있듯 나에겐 멤버들도 있고, 가족도 있었다”며 “그렇게 기다렸더니 훌륭한 작품과 만나게 됐다”고 웃어 보였다.



극 중 덕출은 부상에 방황하며 비뚤어지는 발레 단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꽃은 젊을 때 피기도 하고, 늙어서 피기도 하고, 죽기 전에 피기도 하지. 다 시기가 있는 거야.” 한땐 많이 원망했다. 내 인생의 꽃은 왜 저들처럼 활짝 피지 않는 거냐고. 무용 10년, 가수 10년, 그 끝에 어렵게 손에 쥔 뮤지컬 주연자리다. ‘이제 꽃이 피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강인수는 침착했다. 그는 “이제 막 싹이 무거운 흙을 뚫고 세상 밖에 나온 것 같다”며 “꽃을 피우려면 더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녹록지 않았던 그간의 경험은 강인수에게 높이 날아오를 탄탄한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이었다. ‘고통을 넘어야 이겨내는 근육이 생긴다’는 덕출의 가르침처럼 말이다. 3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사진=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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