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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시설 폐기 대가로 '韓 군축' 요구 가능성…되레 안보 빨간불

■ 비핵화 협상 본말전도 우려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해주면 비핵화 범위 모호해져

北, 한반도 일대 핵추진 군용플랫폼 철수 주장할수도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주한미군 감축·철수' 우려도

리병철 북한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3월 26일 신형전술유도탄으로 명명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참관하고 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종류와 성능이 나날이 증대되고 있어 우리 정부와 군의 보다 적극적인 압박과 대응전략 개발이 필요하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조마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정상간 ‘판문점 선언’, 북미정상간 ‘싱가포르 선언’ 등을 승계하는 북핵 해법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외교를 통한 점진적 비핵화만이 한반도 안보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호응하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북한만 실리를 얻고 한미동맹에 중장기적으로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국방 전문가들은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의 본말이 전도돼 북한이 의도하는 ‘핵군축 협상’으로 변질되면 안보 공약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가비상기획위원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한 박헌옥 북한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20여 년간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분석해 보면 핵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보유하겠다는 속내가 분명하다”며 “이를 통해 핵을 갖지 않은 한반도 안보 상황과 관련해 한국을 종속시키고, 미국과는 핵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핵잠수함 '메인(Maine)'호가 시험발사한 '트라이던트 II '미사일이 지난 2020년 2월 12일 샌디아고 해안 인근 해상 위로 치솟고 있다. 트라이던트 II미사일은 최근 미국이 개발해 배치한 저위력 핵탄두인 'W76-2'를 탑재할 수 있다. 미군은 유사시 한반도 주변해역에 핵잠수함을 전개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지만 북한이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미군 핵잠수함이나 핵항모의 한반도 주변 운용을 견제하고 나설 우려가 있다. /사진제공=미국 국방부


◇범위부터 논란인 비핵화 협상

북핵 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사실상 핵군축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논란의 단초는 모호한 비핵화의 범위에서 비롯된다. 당초 조 바이든 정부의 주요 관계자들은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지난 4월 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밝혔다.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로 범위가 모호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배치된 핵무기가 없다. 무기급으로 전용될 핵물질도 없다. 1차 북핵 위기가 터진 후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이르는 사태 수습 차원에서 미군은 이미 한국에 배치했던 전술핵을 철수시켰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비핵화의 대상은 한반도가 아니라 북한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고집하는 것은 유사시 한국을 보호해줄 미국의 핵전력이 한반도에 전개되거나 주변 지역에서 운용되지 못하도록 걸림돌을 만들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군의 한 관계자는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를 해주면 북한은 이를 빌미로 미국이 전술핵무기뿐만 아니라 핵추진 체계로 움직이는 군용 플랫폼까지도 한반도 일대에서 모두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유사시에 대비해 (핵추진) 항모를 동원하는 미군 증원연습이나 핵추진잠수함 등의 한국 내 기항도 차질을 빚게 돼 결과적으로 대북 안보 태세를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우리의 재래식 전략 확충에도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했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은 물론이고 해군이 경항모 도입 후 차기 혹은 차차기 사업으로 확보하려고 꿈꾸는 핵추진항모도 물 건너 갈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핵탄두 모형을 살펴보는 모습. 북한은 지난 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 이후 해당 사진을 관영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 AP 연합뉴스


◇한미 vs 북중동맹의 함수

북한이 향후 한미의 비핵화 협상 제의에 응하게 된다면 북미 간 수교 등 정식 외교 관계 수립, 평화 협정 체결을 다시 한번 요구할 것이 자명해보인다. 특히 북미 수교 관계가 수립되면 북한 측은 자국을 적대시할 소지가 있는 정책과 수단 등을 완전히 폐기할 것을 미국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결국 주한미군의 감축·철수나 역할 변화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 주한미군은 미국 대북 정책의 상징이자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주요 국방 전문가들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향방에 따라 주한미군을 비롯한 한미 동맹 관계에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도 적지 않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참모를 지냈던 여권의 주요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김정은 정권은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져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으로서는 미국 못지않게 중국에 한반도가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데 주한미군이 이를 뒷받침할 균형추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더라”고 전했다. 반면 군의 한 관계자는 “북중간 신냉전 구도로 국제 정세가 급변한 상황에서 중국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입지를 한층 더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종전 선언 및 평화 협정 체결을 도모하려는 북한 입장에서는 종전 선언의 당사자가 될 중국의 심기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부정적 의견을 냈다.

북한의 주요 핵시설 현황. 주요 핵시설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지하에 은닉된 곳들도 많아 비핵화 합의가 이뤄져도 북한이 제대로 시설을 신고할 지 불투명하다.


◇검증을 누가 하나

우여곡절 끝에 비핵화 협상이 타결됐다고 해도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원자력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차 북핵 위기 당시 정부에 자문 역할을 했던 한 원자력 전문가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기로 약속했다고 해도 제대로 핵물질·핵무기·핵설비를 신고했는지 검증하는 주체를 누구로 할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는 객관성과 전문성을 가진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핵화 검증 주체로 희망하겠지만 북한이 IAEA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만큼 제 3자를 내세우거나 남북 간 상호 사찰, 검증 방식 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증 주체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도 북한이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소규모 지하 핵시설 등을 은폐한 채 핵무기·핵물질 등을 은닉하면 이를 완전히 찾아내 폐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향후 한미가 북한을 핵협상 테이블에 끌어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성급한 합의 도출에 얽매이기보다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에 이를 수 있는 신뢰성 있는 프로세스의 원칙을 북한과 함께 만들어가야 ‘무늬만 비핵화, 결국은 핵군축’이라는 함정에 빠져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병권 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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