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일 재정 위험도가 높은 대학은 폐교·청산이라는 구조 조정 정책 카드까지 꺼낸 것은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 위기가 불거짐에 따라 대학 정원을 적정 규모로 줄이고 부실 대학은 자연스럽게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대학 충원율은 91.4%로 신입생 4만 586명이 미달됐다. 이 중 75%인 3만 458명이 비수도권에서 나왔다. 일률적인 구조 조정의 잣대를 들이댈 경우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속설처럼 지방고등교육 기반이 허물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단 재정 위험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자연스러운 구조 조정과 퇴출을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채찍과 당근으로 지방대 위기 막는다=교육부가 이날 발표한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은 대학을 재정 위험 수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다. 대학의 재정 위험 수준에 따라 개선 권고, 요구, 명령 등 3단계 시정 조치를 내리고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회생이 불가능한 경우 폐교 명령을 내린다. 폐교 대학 교직원의 체불 임금 우선 변제를 위해 청산 융자금 등을 지원하고 폐교 자산 관리·매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또 내년 3월께 대학별로 정원 감축 계획을 받은 뒤 하반기에는 유지 충원율(대학이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점검에 나선다. 전국을 수도권, 충청강원권, 대구경북권, 동남권, 호남제주권 등 5개로 나눠 권역별로 충원율 기준을 제시한 뒤 미달되는 대학에 정원 감축을 권고할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권역별로 충원율 하위 30~50% 대학은 모두 정원을 줄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수도권 대학의 정원도 일부 줄이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채찍뿐만 아니라 ‘당근’도 제시했다. 각 대학이 유연하게 정원을 조정할 수 있도록 ‘모집 유보 정원제’ 도입도 추진한다. 모집 유보 정원제는 대학이 당장 뽑기 어려운 정원을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향후 이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제도다. 같은 법인 소속 대학 간 정원 조정도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편한다.
◇역대 정부 구조조정 한계…법 제도 뒷받침돼야=역대 정부에서도 대학 구조 조정 및 정원 감축은 진행돼 왔다. 국내 대학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지난 1980~1990년대부터 이미 저출산 추세가 뚜렷했기에 대학 구조 조정 논의는 일찌감치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국립대 통폐합과 정원 감축에 초점을 맞췄고, 이명박 정부는 부실 사립대 퇴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포괄적 접근 방식을 택했다.
다만 재대로 된 구조 조정이 없었다는 평가다. 2000년 63만 명에서 2020년 27만 명으로 출생아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이지만 대학 신입생 정원은 아직 50만 명에 육박한다. 특단의 대책 없이는 정원 미달 상태가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교육계에서는 재정 부실을 이유로 정부가 폐교·청산 명령을 내리려면 강제할 수 있는 제도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계대학이 폐교 명령을 거부하고 막무가내로 버틴다면 도리가 없고 장기 소송전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등교육법상 학사 제도 부실대학에 대해 강제로 폐교 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재정이 부실할 경우에도 폐교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재정 부실 학교가 퇴출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대 경쟁력 확충 등 추가 대안 모색 필요=전문가들은 정부의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을 지지한다면서도 지방대의 경쟁력을 키우거나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빠져 아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재정 부실 지방대학을 몇 개 없앤다고 지방대로 학생들이 몰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며 오히려 서울·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며 “의대·약대는 지방이라도 가는 것처럼 지방대학에 경쟁력 있는 학과나 브랜드를 만들어 학생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홍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한계대학에 퇴로를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실효성 있는 지방대 육성 정책이 빠진 게 아쉽다”며 “혁신 도시를 개발하듯 지방대 경쟁력을 키워 학생이 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재정 투입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원은 등록금 동결에 대한 재정 보조를 해주는 것이지 무조건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대학들이 지원을 받으려면 뼈를 깎는 자구책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사립대 교수는 “세금 투입이 불가피한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대학 스스로가 체질 개선에 나서 국민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기자 hooni@sedaily.com, 허진 기자 hj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