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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지련 작가마저 치유받게 한 '무브 투 헤븐'의 힘





“'천국으로의 마지막 이사'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김새별 씨 책에도 자신들이 '마지막 이사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천국으로 잘 가셨으면, 잘 도착하셨으면 하는…. 특별한 이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빨리 제목이 나왔어요.”

지극히 착한 드라마다. 주요 등장인물 중 악역도 없고, 갈등도 여느 드라마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다. 이제는 온갖 자극에 길들여지다시피 한 시청자들의 눈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그런데 정말 아주 가끔씩 이런 작품이 빵 터질 때가 있다. 라면, 피자, 족발, 치킨으로 저녁 배를 채우다 진짜 문득 할머니가 해주시는 김칫국에 뜨거운 밥 말아먹고 싶은 것처럼.

‘무브 투 헤븐’의 시작점은 진심이다. 작품을 쓴 윤지련 작가도, 카메라에 담은 사람도, 드라마 속 인물이 된 사람도 따스한 시선으로 고인의 빈자리를 바라보고 정리한다.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노란 상자 안에 꾹꾹 눌러담아 끝내 도착해야 할 곳에 내려놓는다.

“죽음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있었고,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고 헤어나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드라마를 계속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이기도 했고요.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 치유하는 과정을 알고 싶어서 조사를 하던 중에 김새별 대표(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의 에세이를 감명 깊게 읽었어요. 중요한건 그 책에 담긴 시선, 이런 시선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에세이집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보자마자 출판사와 접촉하고, 이 이야기를 어떤 장르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 처음부터 휴먼드라마로 고민하지는 않았다. 소재가 생소하고, 공중파에서 다루기에는 소재가 무겁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2년여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지금의 ‘무브 투 헤븐’을 기획했고, 참신한 기획을 마다하지 않던 넷플릭스가 그 손을 잡았다. ‘기존과 다른 톤앤매너에 다른 방식의 휴먼스토리로 정통 승부를 해보자’고.

이렇게 유품정리사를 장르물로 다루는 것은 피했다. 윤 작가는 “장르물 드라마에서는 고인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주인공이 범인을 잡는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 고인들에게 주목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작 고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다면 그게 무엇이었을까 묻고 싶었다. 그걸 상상할 때 슬픔이 컸다. 그 슬픔은 아픔과 고통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슬픔으로 느껴졌다. 김새별 대표가 고인의 유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했다. 결국 현장까지 따라나섰다.

“고독사하신 70대 할머니 현장이었어요. 그때는 이미 앞부분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거의 집필 해놓은 상태였는데, 상상하던 것과 달랐어요. 제일 중요한건 그분이 어제까지도 쓰시던 물품들을 보며 전혀 다른 시선을 느꼈다는 점. 물건을 정리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이건 이분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하루에 이만큼의 약을 드셨구나, 술을 드시면서 이런 안주를 드셨구나, 젊었을 때 무슨 일을 하셨구나’를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었어요. 그 경험이 전편에 담겨있습니다.”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한그루(탕준상)의 유품정리 방식은 현실에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안에서 이상적인 유품정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를 만들어내는데 오랜 시간과 고민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한그루에게 가장 위협적이었으나 그로 인해 변화하는 인물인 조상구(이제훈), 한그루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역사 같은 역할인 윤나무(홍승희)가 추가됐다. 재활용 트럭을 모는 탈북민(이문식)의 캐릭터 역시 현실감을 한층 높였다.

“한그루의 모습을 장애인으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내가 상상한 방식의 유품정리를 하려면 현실에 없는 전달자, 고객이 거부하는데도 끝끝내 해내야 하는, 그게 오만이나 독선이 아니라 나쁘게 보이지 않는 인물이 필요했거든요. 한그루는 (망자의 숨은 메시지) 전달자이지만 이를 눈물로 전달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작품 안에서 유일하게 울지 않는 단 한명이 그루인데 주관적 시선을 배제하고, 감정적으로 가장 취약하지만 누구보다 공감과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리고자 했죠.”

“이제훈 배우는 몸을 만들기도 했고, 촬영과정 내내 힘들게 하고 극한까지 몰아갔음에도 감정적인 디테일과 연기를 보여줬어요.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탕준상 배우를 만나 같이 이끌어가는데 정말 200%, 300%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탕준상 배우도 처음 만났을 때가 열일곱 살이었는데 소년같은 얼굴로 와서 작품과 함께 청년이 됐어요.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움직임 하나까지 그루가 되려 노력했고, 그루로 살았어요.”



에세이 속 에피소드는 다소 시간이 오래된 이야기라 비슷하면서도 같지 않다. 작품이 나오는 시점에 가장 다룰 가치가 있어야 했다. 윤 작가는 “결과적으로 내가 가서 정리해드리고 싶었던 분들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문 사회면에 나왔을 법한 고인들이 많았다. 김 작가는 자신이나 김새별 대표나 모두 원작이 있다면 신문 사회면에서 본 고인들의 이야기가 원작이라는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작품은 윤 작가 자신에게도 큰 치유가 됐다.

“다시 설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한 시간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무브 투 헤븐’ 안에서 사랑도 쓰고 설렘도 상상해보게 됐어요. 치유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조금 더 힘나고 밝은 이야기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전해드리고 싶던 또 다른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아들을 둔 아버지로부터 잘 봤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관련된 가족들과 피해자들, 당사자에게 조금이나마 배려 없이 느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윤 작가는 “그분들께 칭찬받고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진심은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져 벌써부터 시즌2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다.

“시즌2는 전적으로 시청자 분들이 원하셔야 하는거고, 그 결정에 맡겨지는 거라 제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에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원하는 대로 봐주셔서 감사해요. 배우들 역시 촬영 하면서 시즌2에 대해 모두 입 모아 하고 싶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최상진 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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