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의창만필] 그 시절 인턴은 괴로웠다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코 골절 놓고 이비인후과·성형외과

서로 본인 영역이라며 치열한 신경전

중간에 끼인 풋내기 인턴만 눈칫밥

환자는 치료 잘하는 과 선택하기 마련

부질없는 다툼 대신 본질에 집중해야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나이가 들어 그런지 요즘 뼈마디가 콕콕 쑤시고 아픈데 어느 과로 가야 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어느 날 불쑥 묻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어떤 사람은 류마티스내과를 가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신경과나 정형외과를 추천해 더 혼란스럽다며 자문을 했다.

비단 지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아플 때 어느 과를 찾아야 하는지 헷갈려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만이 아니라 병원 의사들도 같은 환자를 두고 서로 자기 과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실랑이할 때가 있다.

지난 1988년 필자가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외상 환자들이 응급실에 많이 왔는데, 이들을 어느 과에서 치료할지를 두고 각 과의 레지던트(전공의)들이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였다. 레지던트들이 한 치 양보 없이 자기 과에 유치하려고 하니 환자와 전공의 중간에 있는 인턴들은 괴로운 순간들이 많았다.

하루는 응급실 당직을 서는데 코가 골절된 환자가 왔다. 응급실은 항상 초를 다투는 환자들로 분주하다. 먼저 온 환자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던 차에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코 골절 환자를 보다 문득 ‘코는 이비인후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바로 이비인후과를 호출했다. 그 일로 성형외과 전공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코가 부러진 환자를 이비인후과로 연결한 게 무슨 잘못인가 싶겠지만 기실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코는 원래 이비인후과 영역이 맞지만 코가 골절되면 부러진 뼈를 맞춰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성형외과에서도 진료를 보려고 했다. 그래서 늘 코 골절 환자를 두고 이비인후과와 성형외과가 치열하게 다퉜다. 그런데 풋내기 인턴이 냉큼 이비인후과를 호출했으니 성형외과가 단단히 화가 나버린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몰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미용 목적으로 대형 병원 성형외과를 찾는 환자들은 드물었다. 미용 목적의 성형은 대부분 의원급에서 하고 대형 병원일수록 외상으로 얼굴이 찢어져 봉합해야 하는 경우나 난치성 질환, 복구 수술을 많이 한다. 결국 필자가 근무하던 대형 병원 성형외과는 외상으로 오는 게 대부분이니 응급실에 외상 환자가 오면 사활을 걸고 유치하려 했다. 이비인후과와 성형외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자 병원 측에서 코가 찢어진 개방성 골절 환자는 성형외과, 찢어지지 않고 단순히 부러진 환자는 이비인후과로 교통정리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허리도 마찬가지다. 허리를 다친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신경외과와 정형외과가 충돌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를 찾아 수술하거나 치료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지금은 전세가 역전돼 신경외과에서 허리는 물론 목 치료도 많이 한다. 원래 신경외과는 뇌 질환을 주로 치료했는데, 점차 허리에 관심을 갖는 의사들이 많아진 것이다. 반면 정형외과는 손가락·발가락만 해도 20개인데다 온몸의 뼈가 200여 개가 넘고 관절도 100여 개에 달하다 보니 아무래도 허리나 목에 관심을 덜 가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 결과 허리가 아픈 환자들이 신경외과를 더 찾게 된 측면도 있다.

물론 비교적 치료 영역과 방법이 어느 정도 구별되는 과들도 존재한다. 관절 질환의 경우 류마티스내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 등 여러 과에서 진료를 보는데 과마다 치료 방법이 다르다. 류마티스내과의 경우 약물 요법이 주이고, 정형외과는 주로 중증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한다. 재활의학과는 수술 전후에 물리치료와 운동 요법을 통해 환자가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와 달리 영역이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아플 때 정작 어느 과로 가야 하는지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과든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치료를 하고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환자는 치료를 성공적으로 잘하는 과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또 질환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연구를 많이 하는 과가 더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여론독자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