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정상회담은 역사적 가치 동맹을 넘어 경제·안보를 아우르는 실질적 협력 방안 마련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미정상회담 전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반도체·배터리 협력을 비롯해 원자력발전소, 6세대이동통신(6G)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양국이 협력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한미 미사일지침(RMG)의 완전 해제가 논의되며 ‘미사일 주권’ 확보에 청신호가 켜진 점도 이번 방미의 중요 성과로 꼽힌다.
◇첫 韓·美정상회담…2시간 넘게 진행=문 대통령은 21일 오후 2시(현지 시각)부터 4시께까지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단독회담·소인수회담·확대회담 순으로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테이블 위에 오른 의제는 크게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의약품 공급망 △원전 등 첨단 기술 △보건·백신 등에서의 협력 방안이었다.
두 정상은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협력 잠재력 증진 방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이들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의약품 등 첨단 제조 분야에서 공급망의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한미 협력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협력 확대 의지를 밝혔다. 원활한 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위한 협력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도체·배터리 등에서 한미 협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백신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원전·6G 등 전방위 협력하기로=두 정상은 원자력발전소의 ‘제3국 공동 진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탈원전’이지만 수출용 원전 개발 등에서는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국내에서 논란이 많은 원전 분야에서 실질적 성과를 도출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원전 산업은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만큼 가격 경쟁력, 품질 관리, 시설 관리 면에서 우수성을 지닌 나라도 없고 미국과의 협력이 시너지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며 “중동이나 유럽 등에서는 원전 건설 수요가 있기 때문에 한미가 손잡고 진출하면 상당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 업계는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해외 원전 수출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체코와 폴란드·러시아 등이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가운데 한국과 미국뿐아니라 프랑스·러시아 등 각국이 참전하면서 수주전이 가열되는 상황이다. 한국이 미국과 컨소시엄을 맺는 형태로 입찰에 나서면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역시 기술력을 갖고 있는 만큼 독자적으로 입찰에 나설 수는 있지만 우방인 미국과의 경쟁이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원자로 관련 원천 기술을 제공하고 한국의 두산중공업이 주 기기를 제공하는 형태의 컨소시엄을 구상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미중 패권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6G 분야에서도 한국은 미국 편에 섰다. 민간 우주 탐사, 양자 기술 등 협력 지평을 넓히기로 한 분야에 6G가 포함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 등과 함께 중국 견제 성격을 띤 미국 중심의 ‘6G 동맹’을 결성하게 됐다. 앞서 미일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약 5조 원을 투자해 6G 부문에서 협력하겠다는 사실을 공표한 바 있다.
◇한미 미사일지침 완전 해제 논의도=두 정상이 회담 후 채택하는 공동선언문에는 한미 미사일지침 완전 해제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미사일지침은 지난 1978년 한국 최초의 탄도미사일 ‘백곰’ 개발에 성공한 후 미국 측이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이를 당시 박정희 정부가 동의하면서 세워졌다. 한미 미사일지침이 완전한 수준으로 해제되면 한국은 42년 만에 미사일 주권을 확보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미 미사일지침이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됐지만 우주 발사체에 대한 고체 연료 사용 제한 해제 등 부분적으로만 이뤄진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우리가 미사일 기술을 얻기 위해 ‘미국 통제하에 미사일을 들여오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족쇄가 됐다”며 “따라서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미사일 주권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숙제로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공동취재단, 서울=허세민 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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