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 생전인 1995년에 위조 문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전직 BBC 기자 마틴 바시르(58)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시르는 “거질말을 한 것은 후회한다”면서도 “다이애나의 인생에서 벌어진 일들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그러나 그의 해명에도 영국 정치권까지 나서 BBC의 쇄신을 요구하는 등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바시르는 영국 언론 더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그는 “다이애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이애나의 인생에서 벌어진 많은 일의 책임이 나에게만 있다는 지적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의 인터뷰가 방송된 뒤에도 다이애나와 친분이 두터웠음을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 지난 1996년 자신의 부인이 셋째 아이를 출산하는 날 다이애나가 직접 병원에 찾아왔으며, 이후 부인이 흉막염에 걸렸다는 소식엔 편지를 써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응원해줘서 늘 고맙다”고 한 일화를 공개했다.
바시르는 자신에게 분노한 다이애나의 두 아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에게는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미안하다”면서도 자신과의 인터뷰 때문에 다이애나가 편집증과 고립에 시달렸다는 둘의 주장엔 동의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문제의 인터뷰는 1995년 11월 BBC ‘파노라마’에서 방영된 바시르와 다이애나의 단독 인터뷰로, 이 때 다이애나는 남편인 찰스 왕세자가 결혼 뒤에도 커밀라 파거 볼스(현 찰스 왕세자 부인)와 불륜을 이어가고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바시르가 당시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다이애나 측에 위조된 문서를 제시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BBC의 의뢰로 퇴임 대법관 존 다이슨 경이 해당 논란을 조사한 결과, 바시르가 당시 가짜 은행 명세서를 제시하며 “영국 왕실이 다이애나 관련 정보를 캐기 위해 돈을 쓴다”고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는 BBC와 바시르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윌리엄 왕세손은 성명을 내 “어머니는 사기꾼 기자 뿐 아니라 BBC 최고 책임자들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라며 “해당 인터뷰는 부모님의 관계를 악화시킨 주된 원인이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를 아프게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BBC의 잘못이 어머니의 두려움과 편집증, 고립에 상당한 원인이 됐다는 점을 알기에 형언할 수 없이 슬프다”고 덧붙였다. 해리 왕자 역시 “악용의 악습과 비윤리적 관행의 파급효과가 결국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라며 “이러한 관행이 더 심해져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가디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틴 바시르는 영국에서 태어난 파키스탄 이민 2세로, 다이애나와의 단독 인터뷰 전까진 그리 유명한 언론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과 4년 차 기자가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한 다수의 유명 방송인이 실패한 인터뷰에 성공하자 큰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그는 영국 ITV와 미국 ABCM MSNBC 등에서 앵커로도 활동했다.
지난 2003년 당시 ITV에서 일하던 바시르는 마이클 잭슨과의 인터뷰도 성사시켰다. 하지만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그가 이 과정에서 마이클 잭슨에게 “유엔(UN) 사무총장과 함께 아프리카 아이들을 만나는 일정을 잡아놨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바시르는 말 실수로 구설에 오르곤 했다. 2008년에는 아시아계 미국인 기자협회 행사에서 한 “연설은 아름다운 여성의 드레스와 같아야 한다”며 “중요한 부분은 커버하면서도 흥미를 유지할 만큼 짧기도 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2013년엔 미국 공화당 정치인 세라 페일린에게 “멍청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당시 몸담고 있던 MSNBC를 나오기도 했다.
‘사기 인터뷰’ 파문이 커지며 영국 정치권에서도 BBC의 개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현지 언론 텔레그래프는 영국 하원 디지털·문화·미디어 위원회가 BBC 청문히를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지난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만약 청문회가 열린다면, 1995년 다이애나 인터뷰 당시 BBC 뉴스담당 대표를 맡고 있던 토니 홀 전 BBC 사장을 부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논란에 대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역시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BBC는 가능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홍연우 인턴기자 yeonwoo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