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발표된 미국 4월 인플레이션율이 4.2%로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3월 2.6%로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바로 다음 달 발표된 수치라 고물가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당분간 유지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시장에 퍼지고 있다. 오는 10일로 예정된 5월 인플레이션율 발표에 시장 참여자들의 귀가 쏠리고 있다. 물론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기저 효과일 수도 있지만 미국 경기 회복 속도를 보면 물가가 당분간 고공 행진을 할 가능성도 크다. 우리나라 인플레이션율도 만만치 않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6%였고 생산자물가지수도 6개월 연속 상승해 5.6%를 나타냈다.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율도 지난해까지는 마이너스였으나 올해부터 상승해 4월 1.6%를 기록했다.
이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시대에 돌입한 것인가. 시장에서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수요 증가보다 공급 측면에 기인한 탓이 크다고 분석한다. 코로나로 인한 투자 부족과 생산 감소로 공급이 백신 보급과 더불어 갑자기 늘어난 기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생긴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다. 늘어난 투자 효과가 나타나는 연말부터는 공급 부족 현상이 해소될 것이고 지난해의 저물가로 인한 기저 현상도 사라져 내년부터는 인플레이션율이 다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인플레이션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공급 측면에서의 압력은 낮아질 테지만 백신 보급에 기인한 수요 증가로 물가 상승 압력은 올해 백신 보급이 빠른 선진국에서 시작해 내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 중심 국가의 회복 속도는 더욱 빠를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주택 공급 부족과 임대차3법으로 말미암은 전·월세 가격 상승은 우리 물가에 상승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중앙은행은 이자율을 올려야 하는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몇몇 고위급 인사들은 당분간 정책 이자율의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자율 인상의 시그널이 시장에 가져올 파급 효과를 고려한 까닭이다. 하지만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정책 실행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2013년 미국이 테이퍼링 정책을 시행했을 당시 많은 신흥국 시장이 자본 유출과 환율 급등을 경험했다. 이번에 미국이 테이퍼링 정책을 실행한다면 신흥국에 대한 파급 효과는 지난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부터의 회복이 미국보다 느리고 계속된 경기 침체와 이로 인한 대규모 재정 지출로 경제 체질이 많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경우는 어떨까. 아직 백신 보급과 경기 회복이 본격화하지 않았고, 인플레이션율도 2%대에 머물러 이자율 인상 요인이 많지 않지만 본격적인 물가 상승이 시작되면 달라진다. 미국은 비전통적 통화 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 이자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테이퍼링이나 잉여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율 조정 등의 방법으로 유동성을 환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책 이자율 인상이 주요 정책 통로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안 올린다고 우리도 안심할 수는 없는 이유다. 선제적으로 이자율을 올리기에도 나라 형편이 좋지 않다. 1분기 말 가계 빚이 1,765조 원으로 최고치를 찍고 가계·기업·정부 부채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이자율 인상은 금융 안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내년 초 대선을 생각하면 한은의 이자율 인상은 큰 정치적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 수차례에 걸친 추경, 빚투로 인한 부동산·주식·코인 시장에의 급격한 유동성 팽창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언젠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다시 추경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은에 국채를 떠넘기는 형태로 재원 마련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 시기와 상관없이, 정치권 눈치를 보지 않고, 중앙은행이 확고한 물가 안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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