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동안의 연휴 뒤 문을 연 미국 증시는 혼조세를 보였습니다. 1일(현지 시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13% 올랐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은 각각 0.049%, 0.089% 내렸는데요. 전반적으로 경제활동 재개에 따른 기대와 물가상승 우려가 뒤섞인 장이었습니다.
실제 경제활동 재개 속도가 매우 빠른 미국은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소비도 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잠깐 주춤했던 국제유가도 다시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했죠. 시장에서 바라보는 유가와 인플레이션 전망 등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브렌트유 2년 만 최고치…인도 코로나·이란 핵협상에도 수요증가 더 커
우선 이날 브렌트유가 2년 만에 70달러를 재돌파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브렌트유는 이날 93센트(1.3%) 오른 70.25달러로 2019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장중에는 71달러를 찍기도 했는데요.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은 1.40달러(2.1%) 상승한 배럴당 67.72달러에 마감했습니다. 이는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확장판인 OPEC+는 이날 7월부터 하루 평균 45만 배럴씩 생산량을 늘리기로 한 기존의 계획을 유지하기로 했는데요. 사우디아라비아도 별도로 100만 배럴씩 자체 감산했던 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기로 했습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데도 가격이 오른 것은 수요증가가 더 가파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컨설팅업체 우드 매킨지의 부사장 앤 루이스 히틀은 “OPEC+의 생산량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수요증가 속도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고 평가했는데요.
지금의 유가상승세가 의아하다는 지적도 있긴 합니다. 석유 수요가 큰 국가 가운데 하나인 인도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고 있고 이란과의 핵합의 얘기도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프랜시스코 블랜치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 리서치의 상품 파생 리서치 헤드는 이를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우리는 큰 틀에서는 유가 강세, 미시적으로는 약세 요소가 있다고 본다”며 “작게는 인도의 코로나19와 이란 핵합의 복원 가능성이 있지만 크게 보면 백신이 매우 효과가 높아 미국이 빠르게 되돌아오고 있으며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는 원유 수요가 내년 중반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각종 제품가격과 인플레이션 전망에 영향을 미치죠. 미국의 경제가 재개하면 할수록 수요는 더 커질 수밖에 없어 유가는 계속 오를 가능성이 있는데요. 투자 전문지 배런스는 “최근의 유가 상승세가 지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힐튼호텔, “역대 최고의 토요일 밤”…인플레 영향 전망은 엇갈려
미국의 수요 증가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번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연휴 때 나온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크리스토퍼 나세타 힐튼 월드와이드 최고경영자(CEO)는 미 경제 방송 CNBC에 “미국 전체적으로 지난 토요일 객실이 93%나 찼다. 확실히 코로나19 이후 최고”라며 “아마 역대로도 최고일 것이다. 휴일이라고 다 저렇게 차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숙박 수요가 역대급이었다는 얘기죠.
실제 지난 주 금요일(28일)부터 지난 월요일(31일)까지의 항공 여행객 수도 코로나19 시작 이후 최대치를 보였는데요. 이 기간 동안 하루 평균 178만 명이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습니다.
극장에도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연휴 기간 동안 북미 지역 영화관들의 극장 매출이 9,758만 달러를 찍었습니다. 공포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2’가 5,700만 달러였죠. 폐쇄된 공간인 극장을 찾는 이들이 증가한다는 것은 미국인들이 코로나19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극장을 가게 되면 교통편을 사용하게 되고 먹거리도 사먹게 되죠. 복합쇼핑몰에 위치한 극장도 많지요. 쇼핑도 함께 증가한다는 말입니다.
제조업도 나아지고 있습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에 따르면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61.2로 전달의 60.7보다 상승했습니다. 미국의 하루 평균 코로나19 신규 환자 수도 1만7,000여 명으로 지난해 3월 이후 최저치입니다.
수개월 동안 계속돼 온 얘기지만 이같은 수요폭발은 결국 물가상승 우려로 이어집니다. 지난 28일 나온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3.1% 폭등하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가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일단 28일 미국의 주요 지수가 모두 상승 마감한 데 이어 이날도 다우지수가 올랐습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이 떨어졌지만 소폭에 불과한데요. 골드만삭스의 매니징 디렉터 크리스 휴세이는 “PCE 지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볼 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과장됐거나 이미 시장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통화정책의 실수가 아니라 성장에 동반되는 좋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공감대가 시장에서 형성되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경기 액셀 너무 많아…증시는 당분간 좋을 것”
경제가 성장하면서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현재 연준은 이를 평균 2% 수준으로 보고 있죠. 근원 PCE가 이미 이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높은 인플레가 일시적이라면 골드만삭스의 전망대로 지금의 높은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멈춰섰던 미국 경제가 다시 뛰면서 나오는 ‘좋은’ 인플레로 볼 수 있을 겁니다. 2000년 이후 20여년 간 연방준비제도는 물가상승률의 지속 감소에 애를 태우기도 했죠.
그러나 지금은 경기의 액셀러레이터가 너무 많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완화적 통화정책에 연방정부가 계속해서 수조 달러의 인프라 투자책(사실상 부양책)을 준비 중이고 민간에서는 신용이 커질대로 커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부채만 해도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죠.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시장의 약한 고리 중의 하나입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선임 고문은 “우리는 액셀이 너무 많다”며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인플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단순히 일시적이 아니며 연준이 (통화정책 변경에) 늦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증시는 당분간 좋을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인데요. 에리언 고문은 “경제는 계속해서 열리고 있고 연준은 높은 인플레를 견딜 것이라고 하며 재정풀기는 계속된다”며 “시장에는 지금이 정말 좋은 시점이다. (투자자들의) 리스크 테이킹은 계속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많이 언급됐지만 4일 나올 5월 고용보고서가 중요하겠습니다. 시장에서는 67만4,000개 증가를 점치고 있는데 이보다 많은지, 적은지, 또 그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연준의 통화정책 변경속도가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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