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정유 업체로 꼽히는 엑슨모빌이 ‘탄소 감축’을 강조하는 행동주의 펀드 엔진넘버원에 이사회 의석을 3석이나 내주게 됐다. 엔진넘버원이 이사회 총 12석 가운데 3석을 확보해 엑슨모빌 경영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엑슨모빌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엔진넘버원 측에서 추천한 미국 에너지부 차관보 출신 알렉산더 카스너가 이사진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사회 자리 총 12석 가운데 엑슨모빌이 9석, 엔진넘버원 측이 3석씩을 각각 나눠 갖게 됐다.
앞서 지난달 26일 엑슨모빌 주주총회에서 엔진넘버원은 예비 표결을 통해 이사 12석 중 최소 2석을 확보했는데 이번에 추가로 이사추천권을 따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카스너 신임 이사는 강성 환경 전문가로 엑슨모빌 고위 임원들을 더욱 긴장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환경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는 엔진넘버원은 그간 엑슨모빌이 기후위기에도 석유 및 천연가스 사업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실적 부진도 이어졌다. 엑슨모빌은 지난해 224억 달러(약 25조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실적 악화는 기관투자가들이 소액 주주에 불과한 엔진넘버원(엑슨모빌 지분율 0.02%)의 손을 들어주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 엑슨모빌 2대 주주로 지분 6.7%를 보유한 블랙록은 엔진넘버원에서 추천한 후보 중 3명을 지지했다. ISS 등 의결권 자문사들이 “엔진넘버원 측 이사에게 투표하라”고 권고한 것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이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뤄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만큼 향후 엑슨모빌의 화석연료 사업 노선이 수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 다른 석유 메이저인 네덜란드 로열더치셸도 지난달 네덜란드 법원으로부터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환경 단체 7곳이 네덜란드인 1만 7,200명을 대표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이 기후위기 대응 목표에 따라 기업에 탄소 배출량 절감을 명령한 첫 사례다.
이번 판결은 석유 메이저뿐 아니라 다른 산업도 탄소 감축을 명분으로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컨설팅 업체 메이플크로프트의 리즈 하이프스 분석가는 “에너지 집약 산업군에 도전이 될 것”이라며 “농업·운송·광업 등이 추가로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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