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9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은 일본 후쿠오카에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조세 회피를 위해 벌이는 편법 행위를 막기 위해 새로운 과세 체계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 6월 5일(현지 시간)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은 영국 런던에서 선언문을 현실화했다. 기업들이 매출이 발생하는 곳에서 세금을 내도록 과세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돈은 세계 각국에서 벌고 세금은 본사가 있는 지역에서만 내왔던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이른바 ‘GAFA’인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한 조치다.
각국에서 반독점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세금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빅테크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세 형평성 바로잡겠다는 G7=이번 합의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집단은 빅테크다. 그동안 돈은 많이 벌지만 세금은 적게 내는 이들 기업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과세 체계를 손봤기 때문이다.
실제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시가총액이 1조 엔을 넘는 세계 1,900개 상장사의 올해 4월 말 시가총액과 지난해 3월 말 시가총액을 비교한 결과 시가총액이 가장 많이 오른 기업은 애플이었다.
4월 말 애플의 시가총액은 241조 2,000억 엔으로 1년여 만에 121조 1,000억 엔(약 1,234조 5,055억 원)이나 늘었다. 구글(2위), 아마존닷컴(3위), 페이스북(6위)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재택근무 등이 늘어나면서 이들 기업의 이익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반면 GAFA의 2018~2020년 세금 부담률은 평균 15.4%로 세계 평균(25.1%)보다 9.7%포인트나 낮았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합의 배경에는 빅테크의 지배력에 대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로 빅테크로부터 일부 권력을 되찾는 데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고 분석했다.
◇일상 된 빅테크 소송전=빅테크는 소송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데 따른 후폭풍이다.
프랑스 경쟁 당국이 지난 7일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제소된 구글에 벌금 2억 2,000만 유로(약 2,989억 원)를 부과했는데, 각국에서 수많은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일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 영국과 유럽연합(EU)도 4일 페이스북의 반독점 위반 혐의에 관해 정식 조사에 착수했다.
친정인 미국에서는 사실상 모든 빅테크 기업이 반독점 소송에 직면한 상태다. 미국 워싱턴DC 검찰은 지난달 25일 아마존에 대해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기업들도 각종 반독점 소송을 당한 상태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구글은 지난해 10월 법무부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애플은 미국·영국·호주 등에서 에픽게임스와 반독점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테크래시’ 더욱 거세질 것=테크래시는 ‘테크놀로지(기술)’와 ‘백래시(반발)’를 합친 말이다. 미 기술 대기업들의 성장과 영향력에 대해 광범위하고 강한 반감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중국 내 데이터센터 통제권을 중국 정부에 양도한 애플은 개인 정보를 중국 당국에 넘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 애플리케이션 공급자들이 애플 사용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보를 수집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구글 역시 사용자 위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갖가지 편법을 동원했다고 인사이더가 전했다. 일각에서는 테크래시가 거세지면서 각국의 제재 수위가 한층 강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미 하원에선 11일 빅테크 기업들의 불공정 독점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들이 발의됐다. 여기에는 플랫폼 독점을 종식시킬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아마존이 회사를 2개로 쪼개거나 자체브랜드 상품(PL)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EU도 지난해 12월 공정거래 규정을 어길 경우 매출의 최대 10%까지 벌금을 부과하거나 사업 매각 등을 명령할 수 있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디지털서비스법을 공개했다.
다만 빅테크 규제로 기술 패권 경쟁국인 중국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배런스는 “EU 규제 대상에 중국 기업은 없다”며 “법안이 미 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순진하게 중국에 그 분야를 개방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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