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85년생 서른여섯살. 헌정사상 첫 30대 정당 대표. 평소처럼 당 대표 취임 이후에도 ‘따릉이’를 타고 국회에 출근하는 당대표.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준석 돌풍은 지난 한 달 여 동안 한국정치판을 흔들었고, 앞으로 그 바람의 강도는 더 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이준석 현상을 두고 여러 논객과 전문가들이 ‘청년정치’ ‘세대교체’ ‘MZ세대의 돌풍’ 등 다양하게 정의하고 평가하고 있지만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이준석 바람의 진앙지를 짚고 가야합니다.
“이수역 사건발단 ‘젠더갈등’에 젊은세대 대중적 인기 기반 마련”
그가 2019년 펴낸 <공정한 경쟁: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묻다>의 여는 글은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2018년 11월에 이수역 사건을 발단으로 거대한 젠더 갈등이 터졌고, 그를 기점으로 지금까지의 보수-진보 구조 사이에서 형성된 정치적 운동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운동장이 마련됐다. 2019년 2월에 있었던 여성할당제에 대한 <100분 토론>을 기점으로 나는 의외의 영역에서 젊은 세대에서의 대중적인 인기의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이 대표는 이미 4년여 전에 정치적 ‘균열’을 야기하는 사건에 주목했고, 이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길을 눈치챈 겁니다. 당시 그 자신도 이를 두고 ‘의외의 영역’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성정치인들이 우르르 몰려가 피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할 때 그는 이로부터 소외되는 20대 남자(이대남)들에 주목한 겁니다. 한 순간 지나가는 말로 ‘이대남’을 대변했다면 당대표까지는 오르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젠데 문제에 있어서도 젊은 세대는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행했던 가부장적 질서로 여성에게 안겼던 불평등에 대한 보상 청구서를 뒤늦게 2030세대 남성에게 들이밀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미래세대는 앞으로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그들 앞으로 남겨 놓은 대책없는 부채들을 상속하지 않기 위해 더 강하게 투쟁할 것이다>
젠더문제를 여성과 남성간의 갈등문제가 아닌 기성정치인·세대에게 돌려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겁니다. 보수당 청년정치인이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낼때 공교롭게도 민주당은 잊을만 하면 성비위 문제가 터져나왔고, 이에 대해 철저한 자기 반성이 수반되지 못한 채 지난 4·7재보선에서 참패를 맞게 됩니다. (부동산문제, 조국사태 등 여러변수가 지적되지만 지난 재보선이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비위 사건으로 치러진 선거였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자기 귀책사유에 보다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與, ‘이준석 현상’ 잘못된 해석…‘청년대선기획단장’ 만지작
더불어민주당은 긴장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준석 바람을 진화하기 위해 조만간 발족시킬 대선기획단장에 청년을 지명할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원외 인사를 포함해 젊은 기획단으로 이준석 바람에 맞서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서른아홉살 이동학 청년 최고위원이 단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진단을 잘못해도 크게 잘못한 셈입니다. 이 대표의 당선은 단순히 청년의 바람, 세대교체의 바람이 아닌 ‘이대남’이 밀어올린 전형적인 ‘백래시(backlash)’인데 이를 생물학적인 나이로 대응하려는 자체가 ‘무능한 꼰대’를 증명하는 셈입니다.
이준석, 청년에게 주고 싶은 선물 ‘레디컬 페미니즘에 시달리지 않는 세상’
백래시는 사회·정치적 변화에 따라 대중에게서 나타나는 반발을 뜻하는 말입니다. 흑인 인권 운동, 페미니즘, 동성혼 법제화, 세금 정책, 총기 규제 등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로 인해 보수세력이 영향력과 권력에 위협을 느낄때 발생하는 일련의 반동현상입니다.
이준석 현상이 백래시라는 근거는 지지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에 대한 20대 지지율은 50~60% 수준으로 안정적이었을 뿐 아니라 특히 20대 남성은 70%를 넘나들었습니다. 전통적인 국민의힘 지지층인 60대 노년층까지도 ‘판을 한번 뒤집어 보자’라며 가세하며 대세를 형성했습니다. 20대 남성들이 이준석 돌풍을 밀어올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입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피해의식’이 강한 그들에게 ‘이준석’은 든든한 지원자, 대변자였습니다. 그의 책 <공정학 경쟁>에는 청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로 ‘래디컬 페미니즘에 시달리지 않는 세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선거기간에도 논란이 됐던 할당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남녀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정해 주려고 했던 시도들은 의외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가령 정치만 해도 여성 비례대표를 50%정도 할당하는데, 그 제도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회사의 여성 임원수가 많고 적다는 것으로 여성의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잘라 말합니다. 같은 책에서 이 대표는 <페미니즘이 다소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들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다.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성혐오로 변질되는 것들이 상당히 목격된다>고 진단합니다. 분명한 ‘백래시’현상입니다.
이준석, 공정의 가치…여성과 남성의 ‘실력’
결국 그가 내세우는 ‘공정’의 가치는 여성과 남성의 다름보다는 ‘실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책을 다시 인용해 봅니다.
이쯤되면 이준석 현상에 민주당의 긴장감은 다른 접근으로 풀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던 20대 여성들의 이탈은 가속화되고 처음부터 지지하지 않았던 20대 남성들은 대거 국민의힘으로 더욱 결집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선택은 오히려 간명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이준석의 ‘갈라치기’
이준석 현상을 청년세대의 부각으로 해석하고 동조화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민주당은 대선기획단을 청년으로 내세워 이준석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발상까지 하고 있습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지난 4·7재보선의 참패를 민주당 일각에서는 페미니즘 탓이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이번 이준석 현상에도 청년정치라는 외피만을 보고 분석할 경우 똑같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대표는 재보선 직후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2030세대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 참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적지 않은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그는 20대 여성들은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비위와 이를 수습못하는 민주당에 실망해 떠나고 이대남은 민주당이 ‘페미정당’이라며 이탈할 것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겁니다.
국민의힘에 열광적인 ‘이대남’과 다른 20대여성
실제 정당 지지율을 살펴보겠습니다. 2013년 이후 한국갤럽 정당 지지율 조사(매년 4월 기준) 추이를 보면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20대 여성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27%였지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3%까지 폭락한 뒤 지금까지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별과 연령대를 통틀어 국민의힘 지지율이 한 자릿수인 것은 20대 여성층이 유일합니다. 반면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25~28%사이를 안정적으로 기록중입니다.
20대 남녀의 민주당 지지율은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여성은 2017년 6월 94%에 달했다가 ‘추-윤갈등’이 극심했던 2020년 10월에야 처음으로 50%대를 밑돌기 시작합니다. 반면 남성은 16%가량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를 제외하고 10%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난 재보선에서도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20대 이하 남성은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후보에게 72.5%,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게 22.2% 지지를 보냈습니다. 반면 20대 이하 여성은 박 후보 44.0%, 오 후보 40.9%로 오히려 민주당 지지가 높았고 민주당의 ‘피해호소인’ 등 부적절한 대응에 실망한 표심은 군소정당에 15.1%의 지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20대 표심만 보고 판단하자면 이준석 대표의 당선은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이 만든 결과입니다. 이제 민주당의 합리적인 선택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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