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올해 정부와 별개로 살포한 재난지원금이 총 2조 1,74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자체의 재난지원금이 지자체별 재정 형편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던 데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등 방역 상황과 무관하게 지급된 것으로 드러나 무분별한 포퓰리즘으로 번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20일 행정안전부에서 받은 '광역·기초단체별 재난지원금 지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1일까지 전국 광역 지자체(도·광역시)가 총 2조 1,747억 원, 기초자치단체(시·군·구)는 602억 원의 재난지원금을 자체 지급했다.
지자체별로 보면 경기도가 1조 3,635억 원(64.5%)으로 지원금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서울시 3,148억 원(14.9%), 부산시가 770억 원(3.6%)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전라북도와 경상북도는 자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광역 지자체와 기초자치단체가 이중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결과 지역 간 형평성이 무너진 사례도 속출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집합 제한 조치를 당한 소상공인 A 씨는 지자체의 재난지원금으로 총 250만 원을 받았다. 서울시가 집합 금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서울활력자금 150만 원을 지급한 데다 강남구가 경영안정지원 자금 100만 원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반면 경북 의성군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올해 정부 재난지원금을 제외하고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윤 의원은 "손실이 큰 지역에 충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는 불공정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법인 택시를 운영하는 기사 A 씨는 올해 총 20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정부가 3차 재난지원금(1월)으로 50만 원, 4차 재난지원금(4월)으로 70만 원을 지급한 뒤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절반씩 부담해 50만 원과 30만 원을 추가 지급했기 때문이다.
# 창원시와 똑같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적용된 강원도 원주시의 한 택시 기사 B 씨는 지방자치단체 재난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원주시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 2월 14일까지 거리 두기 2단계, 그리고 현재까지 거리 두기 1.5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창원시의 거리 두기 단계도 원주시와 같았다.
20일 기준 창원시에서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사람은 834명으로 창원시 인구(103만 4,130명, 2021년 5월 행정안전부)의 0.08%가량이다. 반면 원주시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인구(35만 4,768명)의 0.22% 수준인 790명이다. 원주시는 창원시와 똑같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적용했고 확진자 비율이 더 높았음에도 재난지원금은 창원시에만 집중된 것이다.
이처럼 재난지원금 지원 여부나 규모가 천차만별인 것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3월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당시 사실상 지자체의 자체적인 재난지원금 지급을 허용했다. 앞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약속한 1인당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중복 지급할 수 있도록 용인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재난 지원만으로 충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 경우에 지역 차원에서 보완적인 재난 지원을 하는 것은 지자체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지자체별 재난지원금 지급을 독려했다.
문제는 각 지자체에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을 맡겨놓은 결과 ‘재정 여력’이 충분한 지역에만 재난지원금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가장 많은 자체 재난지원금(1조 3,635억 원)을 편성한 경기도는 재정 자립도(세입 과목 개편 후)가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57.3%다. 두 번째로 재난지원금 규모가 큰 서울시(3,148억 원)는 재정 자립도가 75.6%로 지자체 중 가장 높다. 서울과 경기도가 지자체 재난지원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총 79.4%다. 재정 여력이 충분한 수도권에만 재난지원금이 뿌려진 것이다. 반면 재정 자립도가 전국에서 세 번째로 낮은 강원도(24.5%)와 네 번째로 낮은 경상북도(24.9%)는 광역자치단체 단위에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이 ‘0원’이다.
이 같은 재난지원금 쏠림 현상은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지방 균형 발전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조건이라면 복지가 더 나은 수도권으로 지방 사람들이 옮겨간다는 얘기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도에서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할 경우 (지방에서 경기도로) 이동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일자리나 임금 수준이 아닌 재정지출에 따른 인구 이동이 일어날 경우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한번 ‘재난지원금 포퓰리즘’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정부 여당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올해 두 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은 지자체별 재난지원금 논의를 더욱 불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초과 세수로 추경을 편성할 경우 최대 40%의 지방교부세(19.24%)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20.46%)을 지방에 우선 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4월까지의 초과 세수 32조 7,000억 원을 추경 편성에 할애한다고 가정할 경우 지방으로 내려가는 지방교부세는 최대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15일 “추경의 40%를 지방에 줘야 하는데 이걸 다 줄 것인지, 국채 상환하는 데 얼마나 쓸 것인지 등을 논의해 최종 규모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지방정부도 중앙정부와 같이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 행정을 하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이 같은 경향이 더 강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