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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피해 7,000억...목숨까지 빼앗는 보이스피싱

[서민 울리는 그놈 목소리, 이제는 뿌리 뽑자] <상> 독버섯처럼 번지는 보이스피싱

건당 피해 2,210만원...3년새 두 배

코로나 틈타 대출사기형 범죄 극성

돈 뺏긴 취준생 극단적 선택 비극

경찰 "가정까지 파괴...각별 주의를"

보이스피싱 조직이 위조한 검사 신분증과 명함. /사진 제공=부산경찰청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역설적으로 보이스피싱 같은 전기통신 금융 사기의 최대 피해국이라는 오명을 동시에 받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만 3만여 건, 피해 금액은 7,000억 원에 달한다. 보이스피싱은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민 가정을 파괴하고 국가 경제를 좀먹는 악성 범죄다.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의 유형과 대응 전략, 근절 방안 등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50대 자영업자 A 씨는 얼마 전 ‘저금리로 정부 지원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돼 당장 다음 달 가게 임대료가 걱정이던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자 속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낯선 목소리의 남성은 대출 절차 진행을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야 한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로 주소를 전송해줬다. 자신을 금융기관 직원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대출을 받으려면 거래 실적을 만들어 신용도를 높여야 한다며 1,000만 원을 먼저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A 씨는 미심쩍은 생각도 들었지만 밀린 임대료와 직원 월급이 급한 나머지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돈을 받은 남성은 자취를 감췄고 순식간에 거액을 날린 A 씨는 화병에 몸져누웠다. A 씨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지금도 잃어버린 돈만 생각하면 가슴이 턱턱 막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는 가운데 이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저금리를 미끼로 한 ‘대출 사기형’부터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기관 사칭형’에 이르기까지 범죄 유형도 다양하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전 재산을 날리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끊이질 않고 있다.



2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보이스피싱은 3만 1,681건으로 3년 새 30% 넘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과 비교하면 발생 건수 자체는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피해 금액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7,000억 원으로 3년 전인 2017년 2,470억 원에 비해 3배 가까이 급증했다. 건당 피해 금액 역시 2017년 1,018만 원에서 지난해 2,210만 원으로 불과 3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경찰청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A 씨의 경우처럼 서민이나 취약계층을 타깃으로 신용 등급과 관계없이 대출을 약속하거나 기존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타게 해주겠다는 식의 ‘대출 사기형’이다. 지난해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 가운데 대출 사기형(4,856억 원)은 무려 70%에 육박했다. 특히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은 금융기관과 경찰을 사칭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기도 한다. 피해자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실제 금융기관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은행 대표번호나 경찰 112로 전화하는 경우 중간에서 연락을 가로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중반부터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대면 편취 수법이 급증하는 추세”라며 “전화로 계좌 이체를 요구하거나 문자로 모르는 인터넷 주소(URL) 링크를 받으면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유형은 경찰이나 검찰·금감원을 사칭하는 ‘기관 사칭형’이다. 피해자에게 ‘온수 매트 39만 9,000원 승인 완료, 소비자보호센터로 연락주세요’라는 식의 허위 결제 문자를 보내거나 검사를 사칭하는 전화로 범죄 연루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상품권 결제 후 개인식별번호(PIN)를 알려 달라는 식으로 돈을 갈취한다. 이들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가짜 공문은 물론 사무실까지 위장한다.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금전 사기를 넘어 가정을 파괴하고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간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일당에 420만 원을 뜯겼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20대 취업 준비생에 이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배우 지망생도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단순히 재산 피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정을 파괴하고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악질 중의 악질 범죄”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박홍용 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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