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지 117일 만이다. 권력기관 수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 자신을 임명했던 정권을 교체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감사원을 이끌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전날 사퇴하면서 사실상 대선 출마를 예고한 상태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양대 사정기관 수장이 자신이 몸담았던 정권의 반대편에 서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출마 회견에서 '정치 참여로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지적이 있다'는 말에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는 관행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것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법치와 상식을 되찾으려고 하는 국민의 여망을 제가 외면할 수 없었다"며 "제 혼신을 다해 이 일(대선 출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관행상 (전직 검찰총장이 정치 참여를) 하지 않아 왔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두 전직 수장의 대권 직행을 놓고 여야의 입장은 극명한 대비를 보였다. 여권은 이들이 현직 시절 정권 수뇌부에 칼날을 들이댄 것이 결국은 대망을 향한 '정치적 야욕'에 불과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최 전 원장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이례적 질타를 쏟아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지난 22일 "두 자리(감사원장과 검찰총장)가 가져야 할 고도의 도덕성과 중립성을 생각하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보수 야권은 현 정권이 자초한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한 자세로 임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정작 현 정권을 겨냥하자 여권이 '윤석열 내치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여권은 '월성원전 1호기 감사'를 주도하며 문재인 정부에 각을 세웠던 최 원장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두 주자로서는 현 정권의 폐해를 몸소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야권의 논리다. 그만큼 이들의 '정권 교체' 메시지가 반문 세력의 결집을 위한 최적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깔려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최 전 원장은)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도 넘은 압박에 떠밀린 것으로 갑질에 따른 사퇴"라며 "문재인 정권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감사원을 흔들고 인사권을 흔들어 원장을 고립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을 향해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의 무너진 상식을 회복하고 정상적 나라를 만들기 위한 뜻을 가진 분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할 '꽃다발'을 준비해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문재인 정권이 "플랫폼 정권인지 인큐베이터 정권인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야권의 대권 주자를 공급해주고 있다며 비꼬기도 했다.
두 주자가 외견상 비슷해 보이지만 결이 다소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을 향한 징계 청구 등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사퇴했다면, 최 전 원장은 '외압'이라 불릴 정도의 사퇴 명분을 만들지 못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현상은 대중의 인기로부터 시작됐지만, 최재형 현상은 정치권과 일부 엘리트, 언론이 먼저 띄운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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